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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Jun 06. 2023

누구세요?

초록이 싱그러워 들꽃이 묻혀있는 듯 보인다. 꽃인데... 늘 배경색 같던 초록에 묻혀 보이다니. 하지만, 찬찬히 보니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묻혀 보이는 들꽃이었다. 들꽃 없이 초록만 있었다면 그림에 다시 눈길을 주지 않았을 것 같다.


들꽃은 뭐랄까... 꼭 잘 알던 사람 같다. 나는 과거에 당신을 잘 알았다. 그런데 당신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잘 알던 사람인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다른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좀 문제가 아닐까. 더 문제인 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 생각해 내려고 애쓰거나, 찾아보지 않았다는 거다. 존재감 미미한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게 다른 사람이 나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건데, 나도 아무렇지 않게 똑같은 짓을 해 버렸다. 물론 그조차 바로 잊었다. 지나가는 풍경쯤으로...


하지만, 한해 한해 나이를 먹으면서 내게 일어나고 있는 미세한 변화를 감지한다. 이름도 생각나지 않고,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몰랐을 수도 있던 저 꽃에 더 눈길이 간다는 거다. 작은 생명이 보여주는 힘에 코끝이 찡해지고 소박한 모습에 친근함을 느끼며 어느새 마음을 주고 있다. 굳이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된 통찰’ 같은 말을 가져다 붙일 필요도 없이, 한창 물오른 청춘 같은 초록보다 당신이 더 아름다운 주인공 같다고 말해주고 싶어 진다. 물론 청춘 같은 초록이 싫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무심코 지나며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들도 오랫동안 바라보니 새롭게 발견하는 게 많다는 것뿐이다. 


그러고 보니 들꽃은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 친구가 아닐까 싶다. 그는 언제나 저곳에 저렇게 있었다. 나는 길을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그를 잊었지만, 그는 내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섭섭해하지도 않고, 내게 무심한 눈길을 한번 건넬 뿐이다. 다시 돌아온 나는 미안함과 반가움에 수다를 늘어놓는다. 


너구나.

변해 보여서 못 알아봤는데, 찬찬히 보니 알겠네.

그러고 보니, 너 별로 안 변했구나∼∼


 


 박은성, <들꽃>, 캔버스에 아크릴, 53.0 x 33.0 cm, 20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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