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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y 16. 2023

너와 나의 리즈 시절

오전에 젊고 아름답고 또랑또랑하게 말 잘하는 여성분과 얘기를 나누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눈빛과 말투에 괜히 기가 죽었다.

저맘때 나는 어땠나... 

아름답고 자신 있게 말 잘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예전에 내가 써 놓았던 글을 읽으면,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어질 때가 많다. 

까불고 말장난도 하고. 기술도 별로 없으면서 눈에 빤히 보이는 트릭도 쓰고.

그때도 분명 지금처럼 진지했었다. 책임지려고, 잘해보려고 늘 애썼는데, 표현은 참 다르게 했더라.


담담하게 피어있는 들꽃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저 들꽃에 백합이나 장미같이 화려하게 빛나는 리즈 시절은 없으리라. 그래도 좋다. 내 눈길을 머물게 하고, 숙연한 마음이 들게 하니, 그 자체로 충분하다. 


살아보니 인생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장미로 태어났든, 들꽃으로 태어났든, 좋기만 하고, 나쁘기만 한 인생은 아닐 거다. 묵묵히 내 모습을 지키고 산다면, 그게 리즈 시절을 사는 모습이 아닐까. 그러니 저 들꽃은 지금 리즈 시절을 사는 거다.     


이제는 뭐를 하든 까불지도 못하겠고 트릭도 못 쓰겠다. 그건 내가 더 진중해져서가 아니라, 표현 방법이 바뀐 탓일 거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한창때를 살고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건, 언제나 힘들게 버티기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버티기만 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겠지. 화려하게 빛나지 않았을 뿐, 나도 내 모습대로 자연스럽게 살았던 거였다. 


그러니 없던 게 아니다.


너도 그리고 나도 지금 그 시절을 사는 중이다. 


박은성, <들꽃>, 캔버스에 아크릴, 33.4 x 24.2cm,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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