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특히 어렵다고 느꼈던 건, ‘위로하기’였다. 좋은 위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쭈뼛거리며 누군가의 주위를 서성이기만 했던 때가 많았다. 물론 나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도 전혀 몰랐다. 그러면서 착각을 키웠다. 인생을 좀 더 살고 나면, 자신도 타인도 잘 위로할 수 있을 거라고. 물론... 절대 아니었다.
여전히 어렵다. 아픈 기억이 너무 많은데, 아파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는데, 나도 그들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이 한껏 널을 뛰어, 이렇게 가슴이 둥당거리면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는 게 아닐까 싶던 순간 이 그림을 보게 됐다. 잔잔한 연못에 드문드문 올라와 있는 연잎, 쏙 고개를 내민 외로워 보이는 꽃이 어떤 말보다 내 맘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푹푹 찌는 대낮에 살짝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 같았고, 덕분에 긴 숨을 뱉을 수 있었다. 내가 경험한 가장 큰 위로의 순간이었다.
그림을 다시 보고 있자니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A small, good thing>이 생각난다.
엄마는 스코티의 여덟 살 생일 케이크를 주문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생일 아침 학교에 가던 스코티는 사고를 당하고 코마에 빠진다. 아이가 깨어나기만 바라던 부부에게 자꾸 전화가 온다. 케이크를 찾아가라는 전화. 스코티는 결국 깨나지 못한다. 부부는 어딘가로 향해야 할지 모르던 원망과 분노를 케이크 집 아저씨에게 퍼붓는다. 부부의 얘기와 원망을 고스란히 듣던 아저씨는 막 구운 시나몬 빵과 커피를 내온다. 부부는 그가 말없이 내민 빵과 커피를 먹고 마시며 밤이 늦도록 그곳에 머문다.
힘내라.
다 지나갈 거야.
앞으론 잘될 거야.
위로를 건네는 사람도, 위로를 받는 사람도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런 말을 주고받는데 아주 익숙하지만, 아저씨처럼 변명이나 섣부른 조언 없이 들어주고, 따뜻한 커피와 빵을 내미는 진짜 위로는 할 줄 모른다.
A small, good thing. 작고 보잘것없지만, 진짜 위로.
나에게도
그에게도
이런 위로가 필요하다.
박은성, <호수 공원에 핀 연꽃>, 캔버스에 아크릴, 72.7 x 60.6 cm,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