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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Jul 13. 2023

아직은 살아내는 중이다

고개를 떨군 해바라기가 처연해 보인다.

아직은 여름이고

아직은 해도 밝지만

해바라기는 마지막을 살아내는 중인 것 같다.

온통 주름지고, 허리가 굽은 노인을 보는 것 같다. 한평생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잘 버티고 살아온 노인.

그 자체로 보는 이를 숙연해지게 하는 삶의 훈장 같은 모습.


해바라기는 크기를 키우며 자라다 너무 커지면 무게를 견디지 못해 목이 부러진다고 한다.

그런 끝이 보기 싫어 흔히들 미리 뽑는다고 하던데...     


잔인하고 또 잔인한 일이다. 어떤 생명체든 마지막이 있기 마련이고, 마지막이 생생하고 활기 넘치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그렇다고 그 생이 다하기 전에 버려진다는 건 디스토피아 소설의 한 장면 같이만 느껴진다.


태어나는 수고를 했고,

한평생 버티며 사는 노고를 겪은 모든 이에게는 자연스럽게 생명이 다하는 순간이 허락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신유박해 때 순교해 복녀가 된 이순이의 처형 전 옥중편지에는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그 말이 착하다 하지 않던가요. 죽을 사람의 말은 그르지 않으니 눌러보세요 (잘못을 탓하지 않고 너그럽게 보다).”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저 고개를 떨군 해바라기는 무슨 말을 할까.

잊힌 채, 무시된 채, 버려지는 생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하찮은 생명은 없다.     


비록 고개를 떨구고 곧 시들어 갈 터이지만, 아직은 생을 살고 있다.

한 계절을 잘 살았고, 후엔 천천히 썩어갈 운명임을 이미 잘 알고 있었을 거다.

그러니 쓸쓸하지 않다.


더욱이     

추하지 않다.

그저,

잘 산 것이다.     


자연스럽게 맞이하는 마지막 시간도 허락돼야 한다.


당신과 나의 마지막도 있을 테니 말이다.     


             박은성, <해바라기>, 캔버스에 아크릴, 90.9 x 72.7 cm,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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