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올로 조르다노. 물리학자이자 소설가라는 특이한 이력이 눈에 띄었다. 원제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게 만드는 다소 불편한 제목(증명하는 사랑). 사랑에 대해, 우린 무엇을 증명해야 할까? 증명, 실체적 근거, 표준화 같은 단어들이 마구 떠오르며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피곤이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우리(나와 노라) 집에서 집안일을 도와주고 아이를 키워주던 A 부인. 십 년의 결혼생활 동안 정반대 기질의 나와 노라가 서로에게 스며든 것처럼 부인 또한 우리에게 스며들었다. 어느 날부터 부인이 집에 오지 않게 되자 부인이 ‘나’와 노라의 사랑, 아이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인정해 주던 사람, 실제로 우리 사랑이 존재했음을 인정해 주었던 사람이었다고 깨닫는다. 마치 그녀의 인정 없이는 우리의 사랑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사랑의 실체를 확인하는데 부인의 인정을 필요했던 것처럼 말이다.
“모든 사랑은 결국 그 사랑을 발견하고 가치를 인정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그러지 않으면 오해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그녀의 시선 없이는, 우리는 위험에 빠진 기분이었다.” (36)
사라진 부인은 암 판정을 받았던 거였다. ‘나’는 자신의 질병을 받아들이는 그녀의 모습에 나와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이어지는 통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매일 저녁 우리는 그녀의 최근 몸 상태를 묻기 시작한다. 그녀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요"라는 문장이다. 나는 말해주고 싶다. 이해해야 할 만큼 중요한 건 없고, 그렇게 흘러갈 뿐이라고. 그녀의 종양은 통계상 가우스곡선의 끄트머리 지점에 위치하지만 자연스러운 질서 안에 있다고.” (79)
‘나’는 이런 차이가 불편했지만, ‘나’와 달리 감정적인 노라는 부인의 말도 안 되는 논리, 불평, 그리고 아픔에까지 자기 일처럼 공감했다. 아... ‘나’는 또 깨닫는다. ‘나’와 아내 노라 사이에도 이렇게나 깊고 넓은 차이가 있었다니. 그런데...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부인을 대하는 ‘나’보다 노라의 감정적인 공감이 훨씬 더 부인을 위로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녀에게 내 통찰력은 잘 꾸며낸 냉소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내 이런 모습은 그녀를 특히 화나게 하는 부분이자,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남아 있는 젊은 시절의 흔적이다. 우리는 그 점에 대해 더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79)
(종양의 원인이 원자력 발전소 같은 것들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그 핑계가 필요하다면 그들의 잘못으로 남겨두자. 보이지 않는 운명과 공허, 신의 무자비한 형벌에 화를 내기보다 프랑스의 농축 우라늄이나 전자기 방사선에 분노하는 것이 더 쉽다.” (80)
그러면서 ‘나’는 깨닫는다. 때론 ‘나’의 이성적 사고와 과학적 근거보다 부인과 노라처럼 습관적으로 신을 찾고, 복을 빌고,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는 게 우리를 훨씬 더 위로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상황에 따라 이성적이든 아니든, 복잡하든 단순하든, 어떤 믿음이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가끔은 엄격한 일관성의 세계와 과학적인 정밀함의 영역에서 교육받은 우리가 다른 이들보다 힘겹게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어쩌면 아침 일곱 시마다 라디오방송에 나오는 별자리 운세를 믿었던 것처럼 신에게 자신의 마음 일부를 내맡겼던 A부인이 옳았는지 모른다. 어쩌면 별생각 없이 자신의 묵주를 목에 거는 노라가 옳은지 모른다.” (72)
‘나’는 누군가의 죽음이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반영한다고 믿지 않았다. 부인은 자신이 암이라는 형벌을 받는 것이 불공평하다고 여겼지만, ‘나’는 개인의 삶과 죽음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죽음과 실패한 삶 사이 상관관계가 있다면 그렇다면 ‘나’에게 타당한 결말이 무엇이겠는가?
부인이 떠난 후 우리는 애써 감추던 분노와 원망을 터뜨렸고, 그 감정들은 점점 고통스럽게 변해갔다. 불과 몇 센티 떨어져 있을 뿐인데도 더 이상 서로에게 다가갈 방법을 모르는 듯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떠난 부인이 비집고 들어왔다. 거의 마지막 순간,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 “노라를 잘 돌봐줘요.”
“그녀는 벽의 틈새나 보도의 가장자리를 따라 뿌리를 내리는 관목류, 단 몇 센티미터 정도의 틈만 있어도 얼마든지 타고 올라가 건물의 전면을 뒤덮어버리는 덩굴식물에 속했다. 부인은 잡초였지만 가장 고귀한 잡초였다.” (195)
누군가의 부재로 인해 내 옆 사람에 대해, 관계에 대해 소중함을 느껴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 그 과정을 거쳐 두 사람은, 그들의 관계는 더 단단해져 갈 것이다.
다시 물어본다.
“증명해야 하나?”
“무엇으로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이리 단순하고 신선하게 던지게 하다니...
게다 과학도인 ‘나’의 죽음에 관한 차분한 이해와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군중 속에 있는 그를 알아보고, 그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그를 고유하게 떼어놓는 것. 아무리 단단한 집단이더라도. 그의 가족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러고는 그가 자신 안에 가두고 있는, 어쩌면 전혀 다른 본성을 지녔을 그의 고유한 무리와 다양체를 찾아가는 것.
질 들뢰즈, 펠리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