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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 심보선

by 새벽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

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

며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

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

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

는 청춘이라는


(여름은 청춘일까? 그렇다고들 하는데, 여름이 너무 독하다.

열정은 끓어오르되, 아픔은 거세지 않기를...

‘청춘’이란 단어가 너무나 아득하게 들린다.

하지만 여전히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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