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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 읽기

『좀머 씨 이야기』

by 새벽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 씨 이야기』

제목을 보면 좀머 아저씨에 관해 얘기 같지만, 사실 소설의 주인공은 좀머 아저씨가 아닌 자신의 성장 얘기를 주로 한다. 중간중간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삽화가 끼어 있고, 짤막하지만 여운이 아주 오래가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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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나무에 올라가 주변을 보는 소년의 눈에 약간 이상한 동네 아저씨인 좀머 씨가 들어온다. 아저씨는 이른 아침부터 배낭을 메고 이상하게 생긴 긴 지팡이를 잡고 아주 잰걸음으로 동네 구석구석을 걷는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할 뿐 가던 걸음을 멈추고 대화에 응하는 일은 결코 없다. 삯 바느질을 하는 아내와 동네 어느 집에 세를 들어 사는 좀머 아저씨는 돈벌이를 하지도 않고 언제나 걷기만 했다. 누구는 그가 폐소공포증에 걸렸다고 하고, 또 누구는 그는 걷지 않으면 후들후들 떨리는 이상한 질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말을 걸어도 대꾸를 하지 않는 좀머 아저씨는 서서히 소년의 시야에서 멀어진다. 대신 소년은 첫사랑도 하고, 자전거도 배우고, 피아노 선생님에게 굴욕적인 모욕을 당하기도 하면서 키가 170이 넘는 청년으로 커간다. 자신을 괴롭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더 이상 문제가 아닐 정도로 성장한 소년은 어느 날 좀머 아저씨가 천천히 호수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다. 아저씨가 사라진 것을 두고 많은 추측이 오갔지만, 소년은 입을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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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처럼 휘리릭 읽히지만,

쉽게 잊힐 것 같지 않은 여운을 남기며,

이런저런 질문이 비집고 올라왔다.


1. 좀머 씨는 왜 걸을까?

작가는 끝까지 그 이유의 끄트머리 팁조차 주지 않고 글을 끝내버린다. 그러니 자연스레 많은 추측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체 왜? 도망치기 위한 수단인가? 무엇으로부터? 아니면 무언가에 대한 소극적 저항인가?


2. 화자인 소년은 편협하지 않은, 신뢰할 만한 전달자인가?

글쎄.... 결코 아닐 듯.

누구도 객관적이기만 한 전달자이긴 어려운 것 아닌가. 더구나 이야기의 전달자가 어린 소년인 경우엔 이야기가 더 왜곡됐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어린 아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볼 수 있지만, 어리기 때문에 너무 단순하게만 얘기를 전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독자는 궁금할 수밖에 없다.

아이의 이야기만이 전부인가?

그럴 리가 없다...


3. 좀머 씨는 왜 고립된(침묵한) 채 살아갈까?

비가 많이 오던 날 차를 몰고 가던 소년의 아버지는 좀머 씨에게 데려다주겠다고 손을 내밀지만, 아저씨는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라고 외친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아저씨는 그 누구와도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왜? 왜 아저씨는 누구와도 엮이지 않고 스스로 고립(침묵)을 자처할까?


4. 좀머 씨는 자살을 한 것일까?

호수로 걸어 들어가며 자취를 감춘 아저씨는 자살한 것일까?

작가가 그의 자살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5. 좀머 아저씨가 소년에게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모호한 존재,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보인 좀머 씨는 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소년이 호수로 들어가는 아저씨를 구하려 애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소년은 아저씨를 얼마나 이해했을까?


실제로 작가(파트리크 쥐스킨트)는 거의 은둔 생활을 하며 누구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고 사는 것을 고집한다고 한다. 좀머 아저씨에게서 그의 향기가??


뭐라고 해야 하나...

마지막 장을 넘기고선 마음이 한없이 먹먹해지는...


지금 나는 내 옆의 그(녀)를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내가 보지 못한 (듣지 못한) 그 수많은 얘기는 어떻게 될까?



“내가 어째서 그렇게 오랫동안 또 그렇게 철저하게 침묵을 지킬 수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나 죄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기억은 좀머 아저씨가 물속에 가라앉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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