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글, 2018)
이 작품을 읽으며 새삼 깨달은 게 있는데, ‘내가 ‘김금희’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는 거였다.
소설은 정말 많은데, 왜 좋을까...
우선, 그녀가 그리는 인물(특히 여성)을 좋아한다. 내가 딱 좋아하는 결의 여성들이다.
복자『복자에게』, 영두 『대 온실 수리보고서』, 열매 『첫여름, 완주』, 그리고 경애『경애의 마음』
사회에서 누구의 이목도 끌지 못할 조용한 이들이지만, 그녀들은 참으로 단단하게 버티면서 깔끔하게 살고 있다. 그러면서 늘 자신을 잘 지켜낸다. (그녀들의 인생이 쉬웠을 리 없다. 술술 잘 풀리는 인생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리가 없지 않나!) 이런 모습이 아마 내가 생각했던 강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었나 보다.
인물만이 아니다. 작가의 섬세하고 따뜻한 문체가 인물들에게 눈에 띄는 화사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마른 꽃 같은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작가는 언제나 그녀들의 감정 묘사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그것도 천천히. 경애도 그렇다. 마르고 큰 키에 줄담배를 피우는 그녀가 얼마나 아름다워 보일까. 하지만 작가의 섬세하고 따뜻한 문체로 경애는 ‘경애할 만한 아름다운 여성’으로 탄생했다. 작가가 그녀들 하나하나를 참 애정한다는 느낌이 그대로 묻어난다.
경애는 고등학생 때도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큰 상실을 경험한다. 고등학생 때는 화재 사고로 PC 통신 영화 동아리에서 만난 E라는 친구를 잃었고, 대학 선배로 오래 사귄 남자친구는 그녀를 두고 같은 과 선배와 결혼한다. 회사에서도 그녀는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며 자리를 잡지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머리까지 밀고 가열차게 노조와 함께했지만, 농성하는 곳에서 있었던 성희롱을 항의하다 그들의 외침을 흐지부지 흩어버리는 데 의도하지 않은 역할?을 했다. 당연히 사측에도 노조 측에도 그녀는 일종의 ‘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베트남 영업 현장에서도 역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다시 본사로 쫓겨가는 신세가 되고... 어찌 보면 그녀의 생은 상실과 애도라는 단어만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경애할 만한’ 경애는 그런 감정에만 젖어 있지 않고 버티며 일어선다.
일어선다고 뭐... 찬란한 어느 한 때 같은 게 있겠나. 그런 게 있다면 그건 fairy tale이다. 그냥 오늘과 같은 내일이 이어질 뿐이다. 그래도 경애는 도망가지 않고 주저앉지도 않고 서서 버틴다. 그러면서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간다면, 그 정도면 훌륭한 인생이지 않을까.
그 외, 경애 못지않게 중요한 인물인 상수.
작가는 이 찌질한 인물에게도 애정이 많았던 듯하다. 여러 역할을 주었고, 극을 끌어가게 하면서 여러 장치로 그와 경애를 만나게 하고, 그가 경애를 ‘경애하게’ 만든다. 특히나 그가 페북에서 운영하는 ‘언죄다’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지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너무나 실제 같아, 마치 실제 에피소드에서 모티브를 얻은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경애의 마음’ 보다는 ‘경애하는 마음’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었던 소설.
상대방을 지그시 계속 바라보는 태도, 깊이 존중하는 마음. 이런 것이 ‘경애하는 마음’ 일 테니, 이런 귀한 뜻을 가진 ‘경애’라는 단어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엄지를 척 올리고 싶다.
대체 끝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실감하고 확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끝이 만져진다면 모를까. 느끼는 것이고 상상하고 인식하는 것인데 지금 내가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끝을 말해. (60)
경애는 비행, 불량, 노는 애들이라는 말들을 곱씹어보다가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56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곳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게 만들 수 있는가. (71)
상수는 그런 조 선생이 농성에 나서기 전, 오랜만에 아주 말끔하게 양복을 입고, 이사를 찾아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장면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앞을 서성이던 조 선생은 끝내 노크를 하지는 못했고 회사 주차장에서 들려오는 불법해고 철회하라, 눈 가리고 아옹이다, 하는 소리를 들으며 복도로 들어선 손바닥만 한 봄볕 속에 한참을 서 있다가 그냥 계단을 내려갔다. (85)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의 독서동아리에서 읽은 필독 인문서들을 적절히 조합해 내린 결론은 사랑이라거나 연애라거나 하는 것에 복무하는 이들이 일종의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한 통로로 물질 교환이 일어났으며 권력관계가 조성되었고 결국에는 어느 한 편이나 쌍방의 착취로 관계가 종료되기까지 끊임없이 성실과 근면을 강요받았다. (153)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176)
경애는 자기가 인생을 길게 살아오지는 않았지만 기회라는 것은 그렇게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만들어낸 것은 기회가 아니라 일종의 시험에 가깝다고. (285)
어디로 가든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아무리 바닥으로 내려가는 듯해도 최후의 낙하점은 있어야 했다. 경애는 다시는 자신을 방기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번에는 고통 속에 떠내려가도록 놓아두지 않겠다. (306)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들에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구원은 그렇게 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적극성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시흥의 창고에서 생각했다. (307)
힘을 쌓다 보면 축적해 온 모든 것들을 잃을 용기도 생겨나는 것일까. (324)
상수는 그런 사람이고 싶지 않고 오늘이 있으면 당연히 내일이 있고 내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고 해결이 되든 되지 않든 마음을 쓰다가 하루를 닫는 사람이고 싶었다. (330)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방기 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