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아니면 그게 더 이상한 인연

그래서 키워나갈 결심

by 또 래 호태

운명이라는 말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쉽게 쓰지 않으려 한다. 젊은 날엔 눈이 마주치고 가슴이 뛰면 충분했다. 지금은 다르다. 노년을 앞둔 중년에게 운명은 설렘이 아니라 선택이다. 도망칠 이유가 생겼을 때, 그래도 남기로 하는 결정. 돌이켜보면 우리의 만남에는 일곱 개의 장면이 있다. 각각은 평범하지만, 방향이 하나였다.


1. 철길 건너편 쪽방


충주에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철길 건너편 쪽방이었다. 덜덜거리는 선풍기 하나로 삼복더위를 맞았다. 취사도구는 휴대용 가스버너가 전부였다. 기차가 지날 때마다 창틀이 가늘게 떨렸고, 밤이면 쇳소리가 길게 남았다. 퇴근하면 씻고 눕는 것만으로 하루가 끝났다. 그때는 커피 한 잔 마실 여유가 없었다. 커피값이 아까워서라기보다, 내 삶이 아직 그 안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느꼈던 탓도 있을 것이다. 거기에 그녀의 매장이 있었다는 것도 첫 방문 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쪽방은 좁았지만, 내가 바닥을 통과하던 시간의 흔적이었다.


2. 첫 월급과 조금 넓은 방


첫 월급을 받은 날, 나는 계산을 몇 번이나 다시 했다. 금액은 크지 않았지만, 손에 쥔 돈이었다. 누가 봤으면 '저 친구 어깨에 조금 힘이 들어갔네'라고 느꼈을 것이다. 나는 방을 조금 넓혔고, 근무지 근처로 옮겼다. 그녀의 매장에서 보면 더 멀어진 곳이다. 이사는 단순한 주소 변경이 아니었다. ‘나는 계속 여기서 일한다’는 결심에 가까웠다. 채석장에서의 노동은 거칠었지만 그 거칠음 덕에 몸이 돌아왔다. 위암 수술 이후 조심스럽게만 다루던 몸이, 다시 일하는 몸이 되어갔다.


3. 강가 아파트


열 달 뒤, 나는 강가 아파트로 이사했다. 형편이 그만큼 나아진 탓이다. 이만하면 파랑새가 날아와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의 매장은 아파트와 근무지 사이에 있었다. 오가며 들르기 좋은 중간 지점. 무엇보다 거리가 멀지 않았다. 걸어서 20분. 이사 직후에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평안의 강가였다. 혼자 가도 전혀 외롭지 않은 곳. 어려운 시기 내 마음을 고스란히 받아주고 달래주던 장소. 여기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만하다고 느껴지는 곳에 나는 둥지를 틀었다. 저녁이면 물빛이 달라졌다. 나는 퇴근 후 강가를 걸었다. 걷는 동안은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고, 나도 누구를 부르지 않았다. 그저 평안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녀도 그 강가를 찾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같은 풍경을 보며 각자 다른 이유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4. 신참 전입과 당구


강가 아파트로 옮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 신참이 들어왔다. 그 친구의 취미는 다양했다. 그중 하나가 당구였다. “형님, 한 판 치시죠.” 그 말 한마디로 퇴근 후 당구모임이 생겼다. 그녀의 매장 건너편 당구장. 공끼리 부딪히는 타격음은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는 자리를 축하하는 박수였고. 목적구를 찾아가는 내 공은 나도 이제 누구를 향해가도 되는 것인가 말해주는 신호로 보였다. 게임이 길어지면 내기가 붙었다. 대부분은 커피 내기였다. 커피 내기는 사소하지만 확실했다. 그 길이 그날, 우리를 카페로 건너가게 만들었으니까.


5. 2025년 7월 19일


당구를 마친 토요일 저녁이었다. 석양이 유리창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찰랑— 출입문 종이 울렸다. “어서 오세요.” 키오스크 앞에서 형님들은 찬 커피를 골랐고, 나는 늘 마시던 핫 카페라테를 눌렀다. 더운 날에도 뜨거운 커피를 고르는 습관은, 내 고집 같은 것이었다. 잠시 후 그녀가 작은 바구니를 들고 다가왔다. 바삭한 감자 쿠키 몇 개. “이것 좀 드셔보세요. 서비스입니다.”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석양을 마주한 나는, 석양을 등진 그녀를 바라봤다. 빛이 파란 유니폼을 스쳤다. 그 순간 오래전 장면 하나가 겹쳤다. 수술 직후 들렀던 카페, 파란 유니폼, 그리고 마음속에 떠올랐던 단어. "파랑새" 그날, 그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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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두 번의 사별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사별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었어요. 두 남편의 기일이 같아요. 7월 29일요.” 그 말을 들은 날은 8월 10일이었다. 그 말은 연민을 구하는 고백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듣고도 남을 수 있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까짓 거, 목숨 한 번 걸어보죠. 적어도 나는 내년 7월 28일까지는 살아 있겠네요.” 나는 웃었다. 그녀는 당황했다. 도망이 아니라 웃음으로 받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흔들어 놓은 것 같았다.


6-1. 그녀가 지나온 시간


그녀는 스물세 살에 청상이 되었다. 두 아이의 엄마였다. 젊다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나이, 아이들이 아직 손을 놓을 수 없는 나이. 그녀는 그 시간을 버텼다.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책임지며, 자기 몫의 슬픔을 자기 방식으로 감당했다. 14년이 흘렀다. 그 사이 아이들은 자랐고, 그녀는 다시 사랑을 만났다. 두 번째 운명이라 부를 만한 사람. 늦둥이 하나를 낳았다. 그리고 마흔아홉에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같은 날짜, 7월 29일. 사람들은 기구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건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에게서 티끌만큼의 수심도 보지 못했다. 억지로 밝은 척하는 기색도, 세상을 원망하는 표정도 없었다. 카운터 뒤에서 웃고, 손님을 맞고, 감자 쿠키 하나를 내미는 그 손이 가벼웠다. 나는 그 쿠키를 받으며 생각했다. 이게 단순한 서비스일 리 없다고. 두 번의 상실을 겪고도 자기 사연을 앞세우지 않는 사람. 자기 삶의 균열을 타인에게 짐으로 얹지 않는 사람. 그 심성은 가늠키 어려운 고귀함이 아닐까.


그래서였다.
내가 목숨을 걸자고 결심한 이유는 ‘비극의 크기’가 아니라, 그 비극을 품고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온 삶을 대하는 그녀의 밝은 태도 때문이었다.


7. 단 하루


우리는 늘 매장에서만 대화했다. 그녀는 이른 아침 문을 열고 늦은 밤 셔터를 내렸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엄마였다. 손님과는 매장 밖에서 만나지 않는 원칙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별 뜻 없이 저녁을 함께 하자고 말했다. 그날은 그렇게 말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고, 말이 먼저 나왔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매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나중에 그녀의 고백으로 알게 되었다. 그날이 일 년에 단 하루, 딸아이가 교회 수련회를 떠나 퇴근 후 보살핌이 필요 없는 날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 사실을 몰랐는데 하필 그날 저녁을 제안했다. 그때부터 ‘운명’이라는 단어가 설명이 아니라 맞물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8. 우연의 궤적


가끔은 생각한다. 충주에 오지 않았다면. 채석장에 근무하지 않았다면. 철길 건너편 방에서 버티지 않았다면.

첫 월급으로 방을 옮기지 않았다면. 열 달 뒤 강가 아파트로 이사오지 않았다면. 현장에 당구 좋아하는 신참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카페 건너편 당구장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면. 커피 내기가 없었다면. 그 석양 무렵 그 문을 열지 않았다면.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평안의 강가에서 두세 번 스쳤을지도 모른다. 서로는 몰랐을 것이다. 각자 자기 위안을 삼는 장소였으니까.


그러나 우연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수술, 회복, 노동, 월급, 이사, 신참, 당구, 내기, 석양, 출입문 종소리. 각기 다른 이유로 움직였던 조각들이 결국 한 지점으로 모였다. 한 번의 우연은 우연이라고 부르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축적된 우연은 그저 우연이라는 말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 만남을 운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인연이라고 부른다.


9. 파랑새와 귀추의 기로


그녀는 두 번의 상실을 겪고 신앙 하나로 버텨온 사람이다. 이 여인을 위로하려면 연민으로는 부족하다. 넓은 가슴이 필요하다. 나는 궁박하다. 가진 것도 많지 않다. 그러나 세상을 완전히 닫지는 않았다. 사람을 믿는 마음까지 접지는 않았다. 그녀를 보며 알았다. 상처 입었지만 빛을 놓지 않은 사람. 파랑새였다.


나는 귀추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귀한 노년으로 갈 것인가, 추한 말년으로 기울 것인가. 혹한의 바람을 뚫고 그 카페로 향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녀가 주는 평안을 자양분 삼아, 어긋난 내 운명을 빛 쪽으로 돌려놓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운명을 기꺼이 가꿔나가기로 했다. 때로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운명적 사랑도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 생각은 나만 한 것이 아니었다.

다음 편은, 그녀가 생각하는 ‘운명적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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