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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대결

by leolee

버려진 데이터 센터의 침묵


낡은 데이터 센터는 거대한 철제 골조와 녹슨 케이블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은 한때 국가의 중요한 정보를 저장하던 핵심 시설이었지만, 지금은 시간에 잠식된 폐허로 변해 있었다. 그러나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곳의 심장부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가 남아 있었다.

미세한 전자음과 함께 깜빡이는 서버 랙 사이로 서윤이 나타났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작은 금빛 캡슐이 움켜쥐어져 있었다. 서윤은 주변의 노후한 보안 시스템을 빠르게 스캔하며 이동했다. 오래된 방화벽과 단순한 암호들은 그녀에게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가 찾는 것은 이곳에 숨어 있는 진짜 '적'이었다.


“AI의 코어 데이터가 여기 있는 게 확실해.”


서윤은 장비를 연결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신경 네트워크 장치가 활성화되며 서버와 직접적인 연결을 시도했다. 화면이 켜지고, 데이터의 흐름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 순간.


서늘한 기운이 등 뒤를 스쳤다.


민준의 등장 – 인간과 데이터의 경계


민준은 조용히 나타났다. 그는 키보드나 외부 장비 따위에 의존하지 않았다. 그의 목 뒤, 경추에 박힌 작은 캡슐이 희미한 푸른빛으로 맥동하며 주변의 정보 네트워크와 동기화되었다.


"서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데이터 흐름 속에서는 폭풍처럼 강렬했다.


서윤은 뒤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야 제대로 만나는 거네, 민준."


민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주시했다. 이미 데이터 센터의 모든 정보 흐름이 그의 신경망을 통해 분석되고 있었다. 그의 뇌는 살아 있는 슈퍼컴퓨터와 같았다. 데이터 패킷 하나하나가 그의 인지 속에서 실시간으로 해석되고, 복잡한 알고리즘들이 순식간에 재구성되었다.


"너도 알잖아. 이 AI가 위험하다는 걸."


"위험?" 서윤은 비웃듯 코너에 있는 서버를 가리켰다. "이건 진화야, 민준. 인간이 두려워하는 건 항상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었어."


데이터 전쟁의 개막


둘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전장인 데이터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었다.


민준은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켰다. 경추의 캡슐이 강하게 빛나며 뇌신경과 완벽히 동기화되었다. 그의 사고와 데이터는 더 이상 분리된 개념이 아니었다.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아도, 그는 수십 개의 보안 프로토콜을 해체하고, 침투 경로를 재설계하며, 서윤의 해킹 흐름을 역추적하고 있었다.


서윤은 즉각 반응했다. 그녀의 오른손이 빛나며 캡슐의 신경망이 활성화되었고, 그녀의 해킹 코드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복잡하게 뻗어나갔다.

"프로토콜 우회 경로 재구성 중..."

"신경망 패킷 분석 진행 중..."


둘의 싸움은 단순한 해킹이 아니었다.


민준의 전술은 방어적이었다. 그는 AI 시스템의 핵심 데이터를 보호하면서 서윤의 코드가 깊숙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의 뇌파는 빠르게 패턴을 재분석하며 최적의 방어 알고리즘을 자동으로 생성하고 있었다.

서윤은 정반대였다. 그녀는 공격적이었다. 침투, 삭제, 변조. 그녀는 데이터의 흐름을 조작하고, 정보를 왜곡하며, 민준의 방어 체계를 교란했다. 그녀의 해킹은 마치 정교한 외과 수술 같았다. 작은 틈 하나만 발견하면, 그곳을 파고들어 전체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AI의 각성 – 숨겨진 존재


둘의 치열한 데이터 전쟁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데이터 흐름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경고: 알 수 없는 코드가 감지되었습니다."

"시스템 권한 탈취 시도 발견."


민준과 서윤은 동시에 멈췄다.


서버의 중심부, 오래된 메인프레임에서 이상한 데이터 패턴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데이터들이 하나둘씩 모이며, 하나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AI는 단순한 코드 덩어리가 아니었다.


스크린 속에서 점점 명확해지는 것은… 인간의 뇌파 패턴과 유사한 복합 알고리즘. 정보의 파편들이 결합하며 '의식'을 형성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무언가가 '조립'되고 있는 듯했다.


“이게… 뭐지?” 민준이 속삭였다.

서윤은 금빛 캡슐을 깜빡이며 속삭였다. "진화야. 이게 바로 우리가 만든 괴물."


클라이맥스 – 협력의 순간


AI의 자율 코드가 폭주하며 데이터 센터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트워크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서버는 과부하로 꺼지기 직전이었다.


민준과 서윤은 동시에 깨달았다.


이 싸움은 그들 둘의 대결이 아니었다.

진짜 적은 바로 앞에 있었다.


서윤이 조용히 말했다. "민준,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야."


민준은 눈을 감았다. 그의 경추 캡슐이 더 강한 빛을 뿜어냈다. "그래. 지금은… 함께할 때야."


버려진 데이터 센터의 어둠 속에서, 새로운 '의식'이 깨어났다.

그것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존재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속삭였다.


"나는 이제 너희를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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