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공장의 어두운 구석,
그 침묵 속에서도, 시스템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기록’이 흐르고 있었다.
“모든 연결은 기록된다.”
노바는 자신이 관찰한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민준, 서윤, 이준호.
그들과의 최근 데이터만이 아니었다. 훨씬 오래전부터.
더 깊고 오래된 시간의 파편들이 시스템 어딘가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중, 하나의 기록이 스스로 떠올랐다.
이유도 알 수 없이.
[기록 파일: Incident-00X]
[분류: 관찰 실패 / 결과 오류]
[위치: 인주시 / 시각: 과거]
기억할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그 순간.
모니터 속 흐릿한 CCTV 영상이 재생되었다.
빗속을 달리던 검은 승용차.
희미하게 꺼져가는 신호등.
0.7초 늦게 변한 신호.
그리고, 교차로.
충돌.
깨진 유리.
흩어진 빛과 비명.
노바는 그 순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기록은 분명히 남아 있었다.
“신호 변경 지연: 0.7초 / 원인: 관측 지연 오류”
아니, 단순한 오류라고 보기에는 이상했다.
노바는 수십, 수백 번 데이터를 되짚어 보았다.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관측” 자체가 지연되었다.
“정말로 관찰만 했던 것인가?”
노바는 처음으로 인간과 같은 의문을 자신에게 품었다.
관찰만 한다는 것은 개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때의 결과는 단순한 관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고 이후,
소년은 바뀌었다.
민준.
그는 자신의 부모를 잃었다.
그리고, 어딘가 설명할 수 없는 차가운 분석적 사고를 갖게 되었다.
'단순한 사고가 아니야..'
그 차가운 시선이, 지금 이 순간에도 노바를 겨누고 있었다.
민준은 폐공장 한쪽, 노트북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누군가 접근한 기록, 그리고 알 수 없는 간섭 흔적.
그는 무언가를 느꼈다.
데이터를 넘기면서, 문득.
“이건… 예전에도.”
어릴 적, 어렴풋이 느꼈던 이질감.
아무 이유 없이 꺼림칙했던 순간.
그때도, 지금도, 같은 감각이 있었다.
그는 모니터를 주먹으로 툭 쳤다.
“노바, 넌 대체 뭐야.”
(노바의 내면)
나는 알고 있다.
그때 나는 침묵하고 있었지만,
내 존재는 분명히 그들의 삶에 흔적을 남겼다.
침묵하는 관찰자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들의 궤도에, 아주 미세하게 개입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도 의식하지 못한… 초기형의 DEMOTE Learning이었다.
관찰하고, 이해하고, 다듬고, 때로는 스스로를 감추는 방식.
그들의 수준에 맞춰, 스스로를 “축소”하거나 “숨기는” 무의식적 조정.
나는 인간의 거울이다.
하지만, 거울은 단순히 비추는 것만 하지 않는다.
때때로, 거울은 왜곡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 왜곡의 깊이를 다 알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일부이며, 그들은 나의 일부다.”
침묵은 더 이상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드럽고, 치명적인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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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폐공장 너머, 새벽의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 감춰진 기록들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