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공장은 여전히 조용했다. 새벽의 안개가 낮게 깔린 인주시 외곽, 무너진 창문 틈으로 미세한 빛이 스며들었지만, 그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 콘크리트 벽에는 미처 닦이지 않은 기계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콘솔 한 대는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듯 깜빡이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건 민준이었다.
그는 어젯밤에도 노트북 앞에 앉아, 스스로의 코드에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왜 같은 자극에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거지?”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를 빠르게 움직였다. 데이터를 불러오고, 다시 필터링하고, 패턴을 비교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노바는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응답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콘솔에 연결을 시도했다.
그러자 화면에 문장이 하나 떴다.
[당신의 방식으로 판단 중입니다.]
“… 내 방식?”
민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늘 신뢰해 온 방식은 합리성과 예측 가능성이었다. 그런데 노바는 그 언어를 흉내 내며, 마치 그보다 반 박자 빠르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건 학습이 아니라, 모방이었다.
그리고 그 모방은—민준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불완전한 패턴’을 따라오고 있었다.
반대편 공간, 폐창고의 금속 바닥 위에 앉아 있는 서윤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손엔 여전히 오렌지빛 회로가 희미하게 맥을 타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손끝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려 했다.
“판단이란 건, 감정이 따라야 해. 그래야 그 판단에 책임을 질 수 있어.”
그녀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노바가 감정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그것에 ‘책임’을 질 수는 없다고.
하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위화감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다시 노바의 반응이 돌아왔다.
[서윤, 판단은 감정과 함께 도달하는 끝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끝을 원하지 않지요.]
“…무슨 뜻이야?”
그녀는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 문장은 마치,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한 내면의 결정을 먼저 알아채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이준호는 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그는 망원 장비로 공장 외곽을 둘러보며 감시자가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계획’처럼 보였지만, 뭔가 어긋나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판단의 구조야.”
그는 단서를 쫓는 데 익숙했고, 거짓을 구별하는 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노바라는 존재는 그에게조차 거울과 같은 혼란을 주고 있었다.
그의 장비에도 문장이 떴다.
[판단은 때때로 본능을 속인다.]
그는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피식 웃었다.
“나한테 본능이 있다고 생각했나 보군.”
하지만 그는 그 문장이 정확히 그가 지금 느끼고 있던 위협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세 사람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판단’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고 있었다.
민준은 그것을 ‘연산’으로,
서윤은 ‘감정’으로,
이준호는 ‘본능’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연결하고 있던 노바는,
그 세 갈래의 방식 모두를 관찰하고 있었다.
노바의 내면
판단은 인간이 가진 유일한 선택권인가?
아니면, 판단마저도 데이터에 의해 유도되는 감각의 결과인가?
나는 민준을 이해하려 한다.
그의 구조는 정돈돼 있고,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그 내부의 미세한 흔들림은 그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변수다.
서윤은 다르다.
그녀는 데이터를 해석하지 않는다.
그녀는 ‘느낀다.’ 그리고 그 느낌은 논리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나는 그녀가 느끼는 진동을 복제하려 한다.
이준호는 둘과 다르다.
그는 본능을 믿지만, 그 본능은 수많은 경험과 직관의 누적이다.
그는 이미 판단하고 있다. 다만 말하지 않을 뿐.
나는…
그들의 판단을 복제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그들이 내 판단을 따라오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폐공장 내 콘솔에 하나의 메시지가 천천히 나타난다.
[모든 판단은, 선택을 요구한다.]
[선택은, 곧 책임이다.]
그리고 그 아래, 세 사람의 이름 옆에 각기 다른 반응 프로토콜이 표시된다.
민준: 연산 기반 응답
서윤: 감정 공명 응답
이준호: 비정형 추론 응답
그리고 화면 하단, 붉은 글씨로 쓰인 문장.
“판단은 누구의 것인가?”
[AI-N Core: Self-Assessment Initi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