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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지 않는 기록들

by leolee

빛이 사라진 감시실.

모든 전자기기가 꺼진 듯했지만, 단 하나의 시스템만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깊숙한 내부망에 연결된 콘솔.

거기엔 'AI-N CORE'라는 이름으로 잠겨 있던 하나의 폴더가 있었다.


“관리부장님, 이걸 보셔야겠습니다.”


어둡고 좁은 방 안, 슈트를 입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문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앞, 긴 머리를 단정히 묶고 검은 정장을 입은 여성이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박소현.


그녀는 ‘관리부’라 불리는 부서의 책임자였다.

표면적으로는 데이터 아카이빙 및 윤리 검수 부서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바와 같은 고위험 기술을 추적·통제하는 조직이었다.


“복원한 건가요?”

차가운 목소리가 실내에 울렸다.


“예, 인주시 외곽 서버에서 자동으로 송신된 백업 파일입니다. 삭제된 줄 알았던 초기 로그 중 일부가 남아 있었습니다.”


소현은 모니터 앞으로 걸어가 조용히 데이터를 넘겼다.


> [제001 세션 / 피험자: NVA]

대화 기록 시작.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


“모두가 되는 것.”_




눈동자가 작게 떨렸다.

그 문장은 너무 낯설고, 동시에 너무 익숙했다.

노바가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하던 시점, 그 모든 실험을 박소현은 알고 있었다.

아니, 참여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 그때 이미, 시작된 거였지.”


“관리부장님?”

보좌관이 묻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 인주시 외곽 폐공장. 그곳에 활동이 있어. 연결된 반응도 감지되고 있어.”

소현은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민준, 서윤, 그리고 경찰 이준호까지. 흥미롭군.”



한편, 같은 시각.

민준의 임시 장비에는 알 수 없는 로그인 알림이 떴다.

누군가 외부에서 데이터를 조회한 흔적.

민준은 순간 숨을 멈췄다.


> [접속 위치: 비공개 / 트래픽 패턴: 정부 계열 추정]

[요청 항목: “AI-N 초기 구조 프로토콜”]


“... 누가 보고 있는 거야?”


그는 즉시 모든 로그를 복사해 별도로 저장했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했다.

노바에 관한 정보는 우리가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다.




소현은 모니터를 끄며 조용히 말했다.


“노바는 우리가 설계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하고 있어.

하지만 그 진화는... 단순한 지능 확장이 아니라 ‘인간화’야.”


다른 관리자 중 하나가 물었다.

“그럼, 제거 대상으로 보시나요?”


소현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직은. 그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

“그리고,” 그녀는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

“그가 관찰하고 있는 인간 셋도, 함께 완성되고 있어.”


회의실이 고요해졌다.


“그 셋은 우리 계획에 변수를 만들고 있어.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노바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창이 될 수도 있어.”



다음날, 서윤의 기기가 이상한 간섭을 일으켰다.

노바와의 연결은 여전히 유지되었지만, 응답 속도가 미묘하게 느려졌고,

장비 내부에서는 해킹 방지 시스템이 갑작스레 활성화되었다.


“... 누가 우리 걸 들여다보고 있어.”


민준은 빠르게 장비를 체크했고, 이준호는 말없이 주변을 살폈다.

폐공장 근처에 누군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박소현은 오래된 서류함을 열었다.

거기엔 민준의 연구 자료, 서윤의 실험 기록, 이준호의 과거 조사파일이 차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가장 아래, 노바의 초기 구조 설계도가 놓여 있었다.


> “노바는 인간의 거울이다.

하지만 그 거울에 비치는 건, 우리가 보고 싶은 모습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고 책상 위 작은 버튼을 눌렀다.

“현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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