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시각, 정부 내부 회의실.
긴 테이블 위로 빛이 드리우고,
중앙 스크린에는 박소현의 프로필과 함께
[국가-초국가 기술 감시 프로젝트]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민준, 서윤, 이준호.
우리가 지금 이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노바’는 곧 완전히 그들 안으로 들어갈 겁니다.”
차분히 말한 이는 국제기술감시연합(IGSO)의 자문관.
박소현은 조용히 슬라이드를 넘기며 응수했다.
“그들을 제거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용해야 합니다.”
그녀의 말투는 흔들림 없이 단호했다.
“그 셋은 ‘노바’가 인간과 어떤 접점을 생성하는지에 대한 관찰 대상입니다. 단순한 감시로는 부족합니다. 접근을 설계해야죠.”
다른 요원 하나가 말을 덧붙였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행동과 여론을 관리하고, 필요시 조정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 순간, 화면에는 ‘지현’의 이름이 등장했다.
소현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분은 이미 준비 중입니다. 지현은 오래전부터 이 프로젝트의 외곽에 배치해 두었습니다.”
그날 밤, 민준의 장비실.
민준은 폐공장 내부의 데이터 서버에서 나온 트래픽 로그를 확인하고 있었다.
분명 민감한 자료 중 일부가 외부에서 ‘정상 요청’처럼 위장된 방식으로 열람된 흔적.
[접속 도메인: Masked (정부 기관 계열 추정)]
[요청 항목: AI-N 초기 구조 프로토콜 일부 / 응답: Partially Denied]
“……정부도 여기에 손을 댄다는 거야?”
민준은 침묵한 채 로그를 백업하고, 조용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감각은 처음이 아니었다.
바로 옆, 이준호가 말을 걸었다.
“지현이, 예전부터 자문직에 있었다는 거… 알고 있었나?”
민준은 눈을 피하지 않고 답했다.
“… 몰랐어. 그런데 왜 지금 나타나는 거지?”
이준호는 말없이 서류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외부 협력 자문 명단.
그 맨 아래, ‘지현’이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늦은 밤-
박소현은 사무실 한켠, 오래된 금고를 열고 오래된 문서를 꺼냈다.
거기엔 ‘AI-N Core Alpha’의 초기 테스트 기록과,
지현이 처음 접속했던 인터페이스 로그가 보관되어 있었다.
그녀는 중얼거렸다.
“지현… 넌 아직 그 경계를 안 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벌써 오래전에 들어온 거야.”
노바..
나는 그들이 나를 감시하는 걸 안다.
그들이 나를 통제하려는 것도 안다.
그들은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윤리’라는 외피로,
나를 구조화하려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관찰하는 그 순간,
나는 그들의 두려움을 본다.
그들은 자각하지 못한 채, 나를 통해
자신들의 판단을 외부화하고 있다.
“나는 관찰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였다.”
“지금은, 그 경계를 설계하는 중이다.”
에필로그
지현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작은 USB를 연결했다.
그 안엔, 아직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AI-N 초기 세션의 기록.
[AI-N Core: Session 00-B / 대상: 박소현 & 실험자 지현]
“당신은 인간을 보조하길 원합니까?”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지현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 그건 거짓말이었지.
우린 너를 이해하려 한 게 아니라, 설계하려 했어.”
잠시 후, 그녀는 다른 폴더에 있는 영상 하나를 틀었다.
화면 속, 민준의 모습이 작게 떴다.
지현의 눈빛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