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기도 전에 휴대폰이 진동했다.
“검사 주 2회로 변경, QR코드 자동 갱신” — 관리인 단체방 공지였다.
그 한 줄이 어쩐지 현실감 없이 느껴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매일 새벽 검사”가 당연했으니까.
소왕이 방문을 두드렸다.
“태겸, 오늘 검사 없어. 그냥 내려가서 확인만 하면 된대.”
눈곱도 떼지 못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치 못한 여유가 방문 틈으로 밀려 들어왔다.
계단을 내려가며 벽을 스쳤다.
며칠 전 확진자가 나왔다고 파란 비닐이 붙어 있던 3층 앞—
빈 벽이 매끈했다.
어제까지 내 신경을 곤두세웠던 ‘감염의 표식’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건물 현관을 나오니 아파트 정문의 철제 바까지 열려 있었다.
늘 보초를 서던 경비 아저씨는 의자에 앉아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나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눈을 맞추며 웃는 사람이 있었다.
“나가 볼까?”
소왕이 가볍게 묻고, 나는 잠시 숨을 들이켰다.
신선하진 않아도 낯선 바람이었다.
“그래, 나가보자.”
도로 위 흰색 차선이 선명했다.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는데도, 한동안 아무 차도 없었다.
우리는 옆으로 나란히 걷다가—딱, 삼 분쯤 걸었을까—
쿵 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무 일도 아닌데, 두근거렸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QR코드를 열어 봤다. 여전히 녹색이었다.
편의점 앞에서 멈췄다.
문이 열려 있었고, 진열대에는 컵라면이 다시 채워져 있었다.
소왕이 두 팩짜리 두유를 집어 들더니 내 쪽으로 쓱 내밀었다.
“이거, 예전부터 좋아했잖아.”
계산대 투명 가림막 뒤로 점원이 말했다.
“오랜만에 손님 오시네요. 路上注意安全(lùshàng zhùyì ānquán, 길 조심하세요).”
‘오랜만’이라…
편의점이 말하는 ‘오랜만’은, 우리가 잊고 있던 시간이 구체적인 숫자로 돌아왔다는 뜻이었다.
오후 두 시, 관리소에서 온 직원이 현관을 돌며 체크했다.
PCR 면봉 대신 작은 기계로 QR코드를 스캔하곤 “주 2회 검사, 忘了不行(wàngle bùxíng, 까먹으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불편했을 절차인데, 이번엔 가볍게 끄덕였다.
‘주 2회’라는 말이 ‘숨 쉴 틈’처럼 들렸다.
저녁 무렵 계단에서 김을 들고 올라오는 이웃을 만났다.
서로 마주 보고도 본 척만 척했던 사람.
그가 말을 꺼냈다.
“오늘, 살았다는 느낌 나네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울림이 컸다.
나는 천천히 답했다.
“그러게요. 이 김 냄새가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어요.”
그는 웃었고, 나도 마스크 안에서 웃었다.
웃음이 다시 통역 없이도 전달됐다.
집에 돌아와 두유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소왕은 계란을 풀어 기름에 볶기 시작했다.
“태겸, 오늘은 햄도 좀 넣자. 편의점에 있더라.”
노란 계란이 팬에서 부풀었다.
나는 보글보글 끓는 된장국을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 국물, 냄새 멀리 퍼져도 괜찮겠지?”
가끔씩 내가 해 주는 한국음식에 습관이 된
소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다 괜찮아질 거야.”
그 말 한마디가 오늘 하루의 뉴스보다, 학사 공지보다, 통계보다 더 큰 위로였다.
우리의 겨울은 끝나지 않았지만,
언젠가 끝난다는 걸 몸으로 믿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에필로그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카카오톡을 켰다.
어머니에게 “오늘 처음 편의점 다녀왔어요”라고 보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 봄 오면 꼭 보자.”
나는 잠시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창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밤공기가 들어왔다.
냄새는 아직 약간 탁했지만, 분명히 ‘밖’의 공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