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반.
알람은 울리지 않았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몸은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깨어나고, 같은 루틴을 따라 움직였다.
물이 끓는 동안 세수를 하고, 옥수수 가루를 젓고, 어제 남은 찐빵 하나를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아무것도 바뀐 게 없었다.
“태겸, 검사하러 가야지.”
소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 이름을 부를 때 늘 그런 식이다.
존댓말도, 반말도 아닌, 이상하게 편안한 어조.
그건 이 집 안의 공기와도 닮아 있었다. 어디로든 흐르지만, 결코 빠르지 않은.
우리는 층계를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는 없는 건물이었고, 계단은 좁았다.
아래에서 누군가 올라오면, 꼭 벽에 등을 붙여야만 했다.
요즘은 모두가 과하게 조심했다.
누군가 올라오면, 마치 감염자가 지나가는 듯한 반응으로 서로 피했다.
숨도 쉬지 않고 옷깃을 붙잡은 채 몸을 틀고, 발걸음을 멈춘 채 눈을 돌렸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두 층쯤 내려오는데, (사는 곳은 6층) 한 여자가 올라오고 있었고
우리는 동시에 계단 난간 옆 벽에 바짝 붙었다.
그녀는 검은 모자를 눌러쓰고, 후드티 모자까지 덮은 채 눈을 피했다.
“죄송합니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완전히 지나간 뒤에야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태겸.”
소왕이 말했다.
“요즘은 인사하는 사람도 없네.”
나는 조용히 웃었다.
“인사는 침방울이야.”
그 농담에 그도 피식 웃었다.
웃음이라는 감정이 아직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안도감을 줬다.
건물 앞에 설치된 임시 검사소.
파란 천막 아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줄은 길지 않았지만, 간격은 컸다.
모두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말도 없고, 눈 마주침도 없고, 움직임도 없었다.
줄 끝에 서서 휴대폰을 꺼냈다.
QR코드는 녹색이었다.
이 녹색이 내 모든 증명이자 생존 허가증이었다.
앞줄의 아주머니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나는 모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눈빛에는 아무 말이 없었고, 말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이제 우리는 모두 말이 필요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올라오는 길.
아파트 입구 앞 바닥에 무언가 새로 붙어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내려다봤다.
푸른 비닐 테이프.
이전에 보았던 붉은 경고선과는 다른 색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하게 보였다.
소왕이 말했다.
“3층에서 확진자 나왔대.
어제 저녁 PCR 결과 나왔다더라.”
나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그 테이프를 넘었다.
아무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파트 전체가 조용히 봉쇄된 셈이었다.
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되었을 때
관리인 알림이 도착했다.
[공지]
아파트 전체 외출 금지.
생필품은 지정 시간에 1층 앞 수령.
필요시 연락 바랍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천천히 읽었다.
화가 나지도 않았고, 놀랍지도 않았다.
그저, 또 그럴 때가 왔구나—싶었다.
그날 오후, 학생들에게 보낼 숙제 링크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인터넷이 끊겼다.
재접속을 시도하다가, 창밖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베란다로 나가보니, 건물 1층 계단에 누군가 앉아 울고 있었다.
누군가는 안쪽에서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3층 현관 앞에 앉아 멍하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너무 조용해서 더 무섭다…”
나도 모르게 중얼였다.
소왕이 뒤에서 말했다.
“태겸, 밥 해 먹자. 오늘은 계란볶음밥.”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이상하게 울컥했다.
다른 건 몰라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이 평범한 일이
왜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졌을까.
밤.
뉴스에선 ‘방역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국은 어떻게 봉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는지,
전 세계는 어떻게 모범사례로 여기고 있는지.
어디에서 시작한 지는 쏙 빼고……
하지만 화면 속 통계와 상관없이,
나는 이 방 한편에 갇힌 채
계단 하나를 오르내리는 것도 조심스러워해야 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 사실을 문득 잊고 있었고,
그게 더 무서웠다.
이건 익숙해진 게 아니라,
익숙함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게 아닐까.
나는 조금씩
무언가를 잊고 있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내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