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알림이 새벽 공기를 갈랐다.
“오빠, 나 5월 2일에 결혼해.”
사진이 두 장 붙어 있었다.
모바일 청첩장 링크, 그리고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마스크를 쓴 여동생의 셀카.
잠결에 핸드폰을 들고도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항공편은 끊겼고, 한국에 들어가려면 2주 격리 뒤 중국으로 돌아와 또 격리를 해야 했다.
비자, 강의, 생활…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많이 못 불러. 49명 한도래. 밥도 못 내.”
“호텔에서 답례박스만 드려. 와인이랑 조각 케이크 정도.”
“오빠 오면 좋겠지만… 힘들겠지?”
뉴스에서 본 스몰웨딩 풍경이 떠올랐다.
하객을 50명 미만으로 제한하고, 뷔페 대신 1만 원짜리 답례품을 건네는 예식장들.
방명록은 온라인으로, 축의금은 지인이 모아 전달한다는 기사 제목이 스치듯 지나갔다.
동생은 담담했다.
“솔직히 비용은 많이 절약됐어. 드레스도 대여, 다과만 준비.
코로나 아니었으면 못 했을지도 몰라.”
그 말이 묘하게 가슴을 찔렀다.
수업을 마친 뒤, 학생 단톡방에 메시지를 올렸다.
“제 동생이 결혼합니다.
한국어로 20초 축하 인사 찍어서 보내 줄래요?”
하루 만에 열여섯 개의 영상이 도착했다.
“결혼 축하합니다!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두 분 사랑이 영원하기를!”
서툰 억양, 들뜬 표정, 카메라 흔들림까지—모두가 선물처럼 빛났다.
밤새 무료 편집 프로그램을 붙잡고
배경 음악으로 너무 싼티가 안나는 분위기 있는 음악을 깔았다.
학생들의 싱크에 맞춰서 한국어 자막을 넣었고
이래저래 예쁘게 만들고 마지막으로
렌더링이 끝나자 새벽 3시였다.
동영상 파일을 이메일에 첨부하며 썼다.
“하객 대신 내 학생들이 보낸 축가야.
현장에서 틀어 줘.”
결혼식 당일, 칭다오 오피스텔 책상 위엔 노트북과 강의안이 펼쳐져 있었다.
한국 시간 오후 두 시, 나는 평소처럼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다.
‘오늘은 발음 연습부터 해 볼까요?’
학생 목록이 화면 가득 떴지만, 마음 한구석이 덜컥 비어 있었다.
수업 종료 버튼을 누르고 15분 뒤, 동생에게 영상 연결을 시도했다.
신랑과 단둘이 야외 정원 배경 앞에 서 있는 모습이 화면에 들어왔다.
“오빠 보인다!”
예식장은 버드나무가 드리운 호텔 정원, 거리 두기 의자에 하객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주례는 엄마 교회 담임 목사님.
식사 대신 작은 답례박스—와인 미니어처, 티라미수, 손 소독제—가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축가 영상 틀었어. 다들 감동했어.”
동생 뒤로, 하객 몇 명이 휴대폰 불빛 아래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마스크 너머로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사회는 친구가 맡았고, 축가는 대신 내 학생들의 영상이 흘러나왔다고 했다.
전화가 끊기고, 화면이 꺼졌다.
식은 볶음밥이 식탁 위에 남아 있었다.
젓가락 끝으로 밥알을 툭툭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첫인사는 못 했네.
미안하다, 동생아.’
소왕이 프라이팬을 저으며 말했다.
“태겸, 결혼 잘 끝났다며?”
“응. 밥은 못 내고 답례품만 돌렸대.”
“그래도 간단해서 좋네. 여기서도 요즘 그렇게 해.”
“그러게. 돈은 덜 들고, 마음은 더 쓰이네.”
그는 볶음밥을 접시에 담아 내밀었다.
노릇한 계란과 햄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식탁 위에 뜨겁게 김이 올랐지만,
내 마음엔 차가운 미안함이 식지 않고 남아 있었다.
밤, QR코드 배경화면이 어둡게 변하고 녹색 불빛만 희미하게 넘실거렸다.
휴대폰을 들어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잘 살아.
다음엔, 꼭 얼굴 보자.”
버튼을 누르자 작은 진동이 손끝에 닿았다.
그 진동으로 겨우 안심하듯
창밖 불빛이 조용히 흔들렸다.
창문을 닫으며 속삭였다.
“다음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