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을 마치고 컴퓨터를 닫은 뒤, 소왕과 나란히 앉아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탕에 국자로 숟가락을 휘저었고, 나는 스마트폰으로 한국 뉴스를 훑어보고 있었다.
“한국은 벌써 백신 접종 예약 시작했네.”
소왕이 고개를 돌렸다.
“오, 그렇게 빨리? 어떤 백신?”
“모더나랑 화이자… 아마 둘 중 하나겠지.”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화면 속 뉴스 자막을 천천히 읽었다.
“고령자·의료인 대상 우선 접종 시작… 정부 ‘집단면역 목표’”
“집단면역…”
그 단어가 입 안에서 쓸리듯 굴러 나왔다.
한국은 백신을 통해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게 맞다. 원래 백신이란 그런 것이다.
선택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기다렸고, 예약을 하고, 알람을 맞췄다.
하지만 여기, 칭다오에서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백신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통지받는 것’이었고
‘맞고 싶으면 맞는 것’이 아니라
‘맞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며칠 전, 학교에서 알림이 왔다.
[모든 교직원은 다음 주 월요일까지 백신 접종 필수.]
그 아래엔 강조 문구가 덧붙어 있었다.
“접종을 완료하지 않을 경우, 교내 출입 및 수업 참여가 제한될 수 있습니다.”
‘제한될 수 있습니다.’
마치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하나뿐이었다.
맞지 않으면, 교실에도 못 들어가고, 교무실도 못 쓰고, 출입 QR코드조차 거부될 수 있다. 어차피 온라인 수업이라 큰 영향은 없겠지만 거부하면 소외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소왕과 함께 동네 병원에 접종을 받으러 갔다.
건물 입구에는 수십 명이 줄을 서 있었다.
누구도 크게 이야기하지 않았고,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질문은 하지 않는 분위기.
왜 맞아야 하는지도 묻지 않고, 그냥 서 있었다.
“혹시 이거… 어떤 백신이야?”
내가 조심스레 묻자, 소왕은 어깨를 으쓱였다.
“Sinopharm(国药) 아니면 Sinovac(科兴)… 아마 둘 중 하나겠지.”
그 말투엔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주사 바늘이 팔에 꽂히는 순간, 나는 어딘가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이건 나를 위한 것이 맞을까?
나의 건강을 위한 건가, 아니면 통제를 위한 장치일까?
돌아오는 길, 소왕이 문득 말했다.
“사실 나도 처음엔 안 맞으려고 했어. 근데…”
그는 말을 멈췄다.
“근데 어디 갈 수가 없더라고. 지하철도 QR코드 스캔 안 되고, 기차표도 못 사.”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어딘가가 뻐근하게 남았다.
‘우리가 진짜 자유롭게 살고 있는 걸까?’
한국 뉴스에서는 백신 접종 후 소소한 일상이 돌아오는 이야기가 계속 올라왔다.
부모님을 다시 만난 이야기, 마스크를 썼지만 공원에서 산책하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선택했다는 뿌듯함”이 담겨 있었다.
반면, 이곳의 백신은
“생활을 회복하기 위한 조건”이었다.
공공기관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증,
아파트에 택배를 받기 위한 확인용 도장,
출입구에서 초록색 QR코드를 유지하기 위한 보험과도 같았다.
그날 밤, 소왕은 평소처럼 물을 데우고 있었다.
나는 습관처럼 QR코드를 확인했다.
새벽 1시, 여전히 녹색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초록빛은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새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았다.
마스크도, 봉인 스티커도, QR코드도,
그리고—아침마다 콧 속에 들어가는 테스트용 면봉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