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눈

by leolee

그날도 늦은 오후였다. 햇빛이 교실 바닥에 길게 눕고, 수업은 끝났지만 학생 몇 명은 아직 책을 덮지 못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나는 책상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요 며칠, 조금 이상했다.

그녀가 두 번째 케이크를 건넨 건 이미 며칠 전이었다. 딸을 위해 만든 거라며 올린 사진에 장난처럼 댓글을 달았던 게 시작이었다. 첫 케이크는 예상치 못한 선물처럼 달콤했고, 두 번째는 수업 중에 먹은 것이었지만 조금 더 정성스러웠다. 포장도, 장식도. 그때부터였다. 마음에 무언가 작은 것이 하나, 또 하나 놓이기 시작한 건.

며칠 후, 내가 먼저 커피를 사겠다고 위챗을 보냈다.

이번엔 내 차례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좋아요’ 대신 미소가 가득한 이모티콘 하나만 보내왔다.

우린 학교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생각보다 커피 진하네요.”


“원래 이 집이 좀 그래요. 카페인 필요하신 거 아니었어요?”


“음, 딱 좋아요.”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가만히 창밖을 바라봤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상형 같은 거 있어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냥 궁금했다.

그녀는 피식 웃더니, 컵에 입을 대고 조용히 말했다.


“저요? 음… 책임감 있는 사람. 말에 신중하고… 눈이 선한 사람.”


“아, 그럼 나는 꽝이네. 말 많고 눈도… 좀 쳐졌는데.”

그녀가 웃었다.


“아뇨. 선생님 눈, 은근히 따뜻해요. 말할 땐 잘 안 보이지만.”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나는 괜히 농담처럼 말했다.


“그쪽은 눈이 너무 높아 보여요. 눈빛부터 벌써 필터 세 장 낀 느낌.”


“하하, 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그래서 아직 혼자일지도.”


그녀는 웃었지만, 웃음 끝에 어딘가 슬픈 기색이 섞여 있었다.

잠깐, 눈이 마주쳤다.

이상하게 그 순간, 창밖의 풍경도, 테이블 위의 잔도, 다 흐릿해졌다.

오직 그녀의 눈빛만 또렷했다.

높은 눈, 높은 기준, 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작은 외로움이 느껴졌다.

나는 그날 이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라는 사람에 대해.

그녀의 웃음, 말투, 그리고 눈빛.

그리고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나는 관심이 생겼다는 걸.

그녀가 만든 케이크 때문이 아니라, 그녀 자체에 대하여.


그렇게 아쉬움이 남았던 커피숍에서의 대화가 끝난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교무실이 유난히 부산했다.

교장선생님은 교무실과 회의실을 오가며 무언가를 점검하고, 프린터는 쉴 새 없이 서류를 토해내고 있었다.

중국인 선생님들도 긴장한 듯 책상 위를 정리하고, 몇몇은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있었다.


“선생님, 무슨 일 있나요?” 나는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교장선생님은 바쁜 와중에도 반가운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아, 이샘. 사실 오늘 한국에서 대학교 국제처 사람들이 와요. 학생 모집 때문에 중국의 여러 외국어 학교들을 돌고 있다네요.”


한순간에 이해가 되었다. 단지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이제는 본격적인 유학 알선의 중심지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 교장 부부는 중국 내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읽는 사람들이었다. 언어 교육만으로는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려운 시대. 그들은 이미 학교의 정체성을 ‘유학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어느… 대학교에서 오시는데요?”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교장선생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K대학하고 H대학이요. 앞으로도 더 올 거예요. 벌써 몇 군데랑 이야기 중이에요.”


나는 눈을 깜빡였다. K대학, H대학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국내 최고 명문 대학교들. 그런 곳에서 여기까지, 중국의 칭다오 외곽에 위치한 한국어 학원에 직접 오다니.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그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는 단 하나. 학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들이 점점 줄어드는 출생률 속에서 생존 전략으로 외국인 유학생을 선택했다는 걸, 그들의 방문은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더 이상 유학은 특별한 학생만의 선택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수출’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명문대에서 여길 직접 온다고요?”

“우리 학교가 칭다오에서 제일 오래됐잖아요. 무엇보다 꽌시가 좋고요.”

교장선생님은 윙크를 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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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다오에서 꽌시(关系), 즉 인맥과 신뢰로 유지되는 관계망은 매우 중요했다. 내가 부임하기 훨씬 전부터 이 학교는 지역 내 공립학교와도 연결되어 있었고, 졸업생들은 꾸준히 한국으로 진학해 왔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입시 파이프라인’이 형성된 셈이다.


나는 순간 교실에 앉아 있는 내 학생들이 떠올랐다.

서툰 발음으로 “안녕하세요”를 반복하며 열심히 따라 읽던 아이들, 장학금을 걱정하며 유학 상담을 하던 아이들. 그들이 이제는 서울 한복판의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다니. 마음 한켠이 찡했다.


"선생님도 나중에 인터뷰 같이 들어가실 수 있어요. 질문이 한국어니까, 옆에서 좀 도와주세요."

교장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문득 다른 감정을 느꼈다.


설레는 마음.


그렇다. 이곳은 분명 외국 땅이지만, 아이들이 꿈을 꾸고, 나는 그 꿈에 손을 얹을 수 있는 자리였다.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일의 의미가 ‘문법’이나 ‘회화’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걸, 나는 그 순간 깨닫고 있었다. 아이들이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나는 그 여정을 조금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일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오늘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곧 도착할 명문대 관계자들을 맞이하며, 교실과 미래를 잇는 또 다른 문이 열릴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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