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한 조각, 이야기 한 모금

by leolee

오늘도 마찬가지로 진도를 나가야 했지만, 그녀가 가져온 케이크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초콜릿 크림 위에 가볍게 올려진 생딸기, 그리고 바삭하게 구운 타르트지가 어딘가 낯익었다. 이제는 좀 익숙해졌고, 나이도 비슷해서 그냥 반말을 하기로 했다.

나는 웃으며

“혹시... 며칠 전에 모멘트에 올렸던 그 케이크 또 만든 거야? 너무 맛있었어”

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살짝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때 네가 먹고 맛있었다고 댓글 달았잖아. 난 그게 진짜 먹고 싶은 줄 알고 만들었지. 근데 너무 급하게 만든 거야. 이번에 케이크는 정성을 좀 들였지. 한번 먹어봐 다를 거야.”

조금은 들떠 있던 마음이 케이크의 달콤한 향과 함께 잔잔해졌다. 나는 수업 중이지만 조심스레 포크로 한 조각을 떼어 입에 넣었다. 진심으로 맛있었다. 말로 표현하긴 어려웠지만, 그 순간만큼은 수업보다 이 케이크가 더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이거... 정말 맛있다. 너희 딸이랑 같이 만든 거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응. 이번이 두 번째야.”

“말대로 이게 좀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음, 평가 불가. 다 맛있어.”

우리는 잠깐 웃었고, 케이크 얘기를 시작으로 수업 전 다른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나는 책을 덮고 말했다.

“수업은... 우리 다음에 해도 되지 않을까? 오늘은 그냥, 얘기하고 싶어.”

“그래.. 어차피 기분도 안 나고 그냥 이야기나 하자.”

다행하게도 승낙을 해서 전에 나간 발음수업까지만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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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우리는 가까운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녁이 다가오는 시간, 창밖에는 은은한 석양이 번지고 있었고, 커피 향이 은근히 분위기를 더했다.

“딸이랑 케이크 만들면서... 생각이 좀 많아졌어.”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어떤 생각?” 내가 물었다.

“이혼한 거 말이야. 지금 생각해도 내가 너무 성급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해. 아이 아빠에 대해선 원망보다… 그냥 미안해. 딸에게 좋은 아빠를 주지 못한 게.”

나는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처음 듣기도 하고 정말 남일에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무엇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조금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나도 예전엔 사랑 많이 해봤어. 남자도 꽤 만났었고.”

“오, 갑자기 러브스토리?”

“흥미 있어?”

“완전 있지.”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학 시절 만났던 첫사랑 이야기, 자신보다 10살 많던 직장 상사, 그리고 우연히 여행지에서 만났던 일본 남자 이야기까지. 그녀의 말속에는 웃음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었다.

“근데 말이지, 나 예전에 한국 남자도 만난 적 있어.”

“정말?”

“응. 내가 한국말 배우기 전이었어. 우리는 서로의 말을 못 해서 그냥 번역기로 대화했는데… 재밌는 사람이었지. 잘 웃고, 잘 먹고, 감정 표현도 솔직하고.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괜찮았던 사람 같아.”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으며, 괜히 머릿속으로 그 한국 남자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그녀는 왜 그 사람과 잘 되지 못했을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밖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내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응. 나 딸 데리러 가야겠다.”

“그래, 나도 슬슬 집에 가야지.”

우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은 제법 선선해져 있었고, 그녀는 작은 손가방을 가볍게 쥐고 내 옆을 걸었다.

“오늘... 고마워. 오랜만에 이렇게 얘기 많이 한 것 같아.”

“나도. 케이크도 고맙고. 다음엔 내가 커피 살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뭔가 묘하게 따뜻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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