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모양 “우”

by leolee

다시 교실에 사람이 들어섰다. 먼지 쌓인 책상 위로 햇살이 비치고, 지난 계절에 멈춰 있던 시계는 여전히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랫동안 정지해 있던 공간에,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한 걸음이 있었다. 그녀였다. 머리를 단발에, 화장은 하나도 안 한 얼굴에 작은 메모장을 가슴에 껴안은 모습으로 나를 향해 미소 지었다. 사실 옷가게 사장이라길래

좀 가꿔서 올 줄 알았지만 그냥 공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너무 편하게 왔다.


“선생님, 저… 다시 처음부터 하고 싶어요.”


그녀의 말은 반가웠지만, 동시에 무거운 예감을 품게 했다. 그녀는 코로나 이전에 한국어 초급 과정을 꽤 잘 따라오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마치 어느 날, 칠판에 적은 모든 글씨가 지워진 것처럼, 그녀는 스스로를 ‘완전 초보’라 칭하며 다시 시작하길 원했다.


“기억이 다 날아가버렸어요. 발음부터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의자에 앉았고, 나는 내 앞에 앉은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첫 수업을 기본 모음부터 시작했다.


"아, 어, 오… 그리고…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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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을 지도할 때 나는 종종 입 모양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편이다. 그래야 중국어 발음에 익숙한 학생들이 한국어 특유의 입술 움직임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 발음을 설명할 때, 입술을 길게 앞으로 내밀었다. 거의 입술이 튀어 나가는 수준이었다. 그 순간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고, 이내 피식 웃음을 참다 실패한 듯 고개를 돌렸다.


“너무 귀여우세요, 선생님…” 그녀가 수줍게 말했다.

“네? 귀엽다고요? 어디가….???’


나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건 교육적 과장이야. 과장. 알겠지?”


라고 말하며 다시 한번 평범한 입 모양으로 ‘우’를 발음했다. 그녀는 끄덕이더니, 따라 해 보려 애썼지만, 그 소리는 어딘가 이상한 방향으로 굴러갔다. 입술보다 볼이 먼저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입술을 좀 더 앞으로. 마치 작은 풍선을 불 듯이.”


“이렇게요?” 그녀는 입술을 내밀었는데, 이번엔 너무 내밀어져 있었다. 나는 웃음을 참으며 손가락으로 원 모양을 그려 보였다.

그녀는 천천히 흉내를 내며 다시 말했다. “우…”

이번엔 나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됐어.”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메모장에 ‘우’자를 적으며 중얼거렸다.

“이 작은 소리 하나도 어렵네….”

나는 말했다. “그건 너의 입이 오랫동안 닫혀 있었기 때문이야. 소리는 익숙한 것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꾸 해보면서 새로 기억을 쌓는 가거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봤다. 봄의 끝자락, 햇살이 유리창에 반사되어 수업실 한쪽 벽을 물들였다.

작은 먼지들이 공기 중에 떠 있었고, 조용한 교실 안에서 ‘우’라는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울렸다.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 다시 말문이 트이는 시작의 시간. 입술 끝에서 맴돌던 거리감이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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