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오후, 교실은 한층 더 조용했다. 창밖에서는 초봄 햇살이 길게 드리우고 있었고, 창문 너머로는 몇 마리의 참새가 짹짹거렸다. 나는 전자칠판 앞에 서 있었고, 그녀는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우아’ 예요? ‘오아’ 예요?"
그녀의 눈썹이 헷갈린다는 듯 찌푸려졌다. 오늘의 주제는 이중모음. 다른 학생들이 대체로 넘어간 내용이었지만, 그녀에겐 아직도 이 모음들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 보였다.
"좋은 질문이야. 자, 칠판을 봐봐."
나는 펜을 들어 ‘ㅘ’라고 썼다.
"이 글자는 'ㅗ'에 'ㅏ'를 더해서 만드는 이중모음인데, 소리 내보면 와. 오~아. 하지만 실제로 한국 사람들이 발음할 땐 어떻게 될까?"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냥 ‘우아’처럼 들려요. ‘와~’ 말고 ‘우아~’"
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게 핵심이야. 사실 'ㅘ'는 이론적으로는 'ㅗ+ㅏ'인데,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발음할 때 'ㅜ+ㅏ'처럼, '우아' 쪽으로 더 가깝게 소리 내는 경향이 있어. 왜냐면 입 모양이 더 편하거든."
나는 입 모양을 천천히 만들어 보이며 그녀에게 따라 해 보라고 했다.
"오아. 다시 한번. 우아. 느껴지지? 입술을 앞으로 내밀었다가 열 때가 훨씬 편하지?"
그녀도 내 동작을 따라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오아는 좀 어색해요. 우아가 더 자연스럽네요."
"그래서 실제로는 ‘ㅘ’를 쓸 땐 오보다는 우처럼 들리기도 해. 하지만 표기할 땐 절대 헷갈리면 안 돼. 무조건 ‘ㅗ’에 ‘ㅏ’가 붙는 ‘ㅘ’야. 듣기와 쓰기를 동시에 연습해야 하는 이유지."
그녀는 노트에 ‘ㅘ’를 여러 번 써 내려갔다.
잠시 쉬었다가 나는 다시 칠판에 글자를 적었다.
‘왜’, ‘웨’, ‘외’
"이건 좀 더 어려워. 다르게 생겼는데, 발음은 같아."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외’, ‘왜’, ‘웨’는 모양이 다 다른데요? 근데 발음이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게 한국어 발음의 특이한 점이야. 실제 발음은 다 [웨]로 해. 한국인들 대부분이 그렇게 해. 물론 과거엔 구분했지만 지금은 거의 안 해."
"아… 진짜요?" 그녀가 입을 벌렸다.
"응. 그러니까 네가 외국인이어도 이건 절대 창피한 게 아니야. 한국인도 똑같이 발음해. 우리는 습관이 돼서 특별히 구분하지 않는다는 걸 못 느끼는 거지"
나는 그녀에게 연습지를 건넸다.
"여기 '외국', '왜요?', '웨딩' 이 세 단어를 보고 발음해 봐."
그녀는 머뭇거리다 천천히 소리 냈다.
"[웨…국, 웨…요, 웨…딩?]"
"좋아! 그게 정답이야."
그녀의 눈이 조금 빛났다. 이런 순간이 참 좋다. 한 겹씩 안개를 걷어내며 안심하는 표정.
이번엔 ‘의’를 가르칠 차례였다.
나는 또다시 칠판에 적었다.
‘의’
"이건… 더 복잡해요."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좀 헷갈릴 수 있어. 자, 기본적으로 '의'는 세 가지로 발음해."
나는 숫자를 손으로 하나씩 접으며 설명했다.
"첫 번째, 단어 처음에 혼자 있으면 그냥 [의]로 발음해. 예를 들어 ‘의사’, ‘의미’. 발음해 봐."
그녀가 자신 있게 말했다.
"의사, 의미."
"좋아. 두 번째는 단어 속에서 조사로 쓰일 때야. 예를 들어 ‘태겸의 책’ 이럴 때는 [에]로 발음해. 중국어의 的처럼."
"아, 的! 그건 익숙해요."
"맞아. 그래서 조사 ‘의’는 보통 [에]라고 해. 그리고 마지막, 단어 속에서 연음으로 넘어갈 때는 [이]가 돼. 예를 들어 ‘회의’. 발음해 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훼이]?"
"정확해. 표기는 ‘의’지만 실제 발음은 [이]야. [훼이]."
그녀는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신기해요… 진짜 다르게 읽네요."
나는 다시 칠판에 표를 그려 정리해 줬다.
1. 의사 = [의]
2. 나의 책 = [에]
3. 회의 = [이]
"이건 문맥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 계속 들으면서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어. 자, 같이 한 번 더 읽어볼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모음의 조화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이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이런 실수도 자주 해. 예를 들어 ‘오’와 ‘어’, ‘우’와 ‘아’ 같은 음은 발음이 비슷하게 들릴 수 있어."
"맞아요, 저 항상 ‘고’와 ‘거’ 구분 힘들어요."
"맞아. 한국어에는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이라는 개념이 있어. 예를 들어 ‘오’는 양성이고, ‘어’는 음성이야. ‘우’랑 ‘아’도 성질이 다르고, ‘오’와 ‘에’, ‘우’와 ‘애’도 각각 달라. 그런데 사람 귀에는 말할 때 비슷하게 들릴 수 있어도, 그걸 듣는 대로 쓰면 안 되는 거야. 예를 들어 ‘고에’처럼 들린다고 해서 ‘괴’를 ‘고에’라고 쓰면 안 되듯이, 없는 모음을 임의로 만들어 쓰면 안 돼. 반드시 실제로 존재하는 글자 조합으로만 써야 해."
나는 그녀의 노트를 슬쩍 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들린다고 해서 그대로 쓰면 안 돼. 들으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써보면서 기억해야 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래서 쓰고, 보고, 듣고… 같이 해야 되는 거군요."
"그렇지. 한국어는 오감으로 배워야 해."
그녀는 마침내 웃으며 노트를 펼쳤다.
"그럼요, 선생님. 오늘은 이중모음과 ‘의’… 제대로 끝장을 볼게요."
나는 조용히 웃으며 그녀의 집중하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수업의 끝은 언제나 조용한 각오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상하게 공부할 때 그녀의 모습은 조금 신뢰가 안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