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말하는 아이들, 현실과 마주친 나

by leolee

수업이 끝나기 전,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정말 중요하지만, 우리가 이 수업을 듣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잖아요. 혹시 가고 싶은 대학이나 전공, 혹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학생들은 눈을 피하거나 머뭇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한국어 실력 향상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그 이후의 삶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번 주 숙제를 하나 내줄게요. 각자 가고 싶은 대학이나 전공을 인터넷으로 한번 찾아보고, 왜 그걸 선택했는지도 생각해 보세요. 내일부터 네 명 정도씩 돌아가면서 발표해요. 저는 여러분이 발표하는 걸 듣고 간단한 피드백도 해줄게요.”

다음 날, 교실엔 조금 긴장된 공기가 감돌았다. 학생들은 나름대로 조사한 대학 이름과 전공, 그리고 선택 이유를 손에 쥔 메모지나 핸드폰 노트에 적어온 모양이었다.

첫 번째로 발표한 학생은 샤오왕(小王)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는 S대학교의 IT융합학과에 가고 싶어요. 원래 컴퓨터를 좋아했는데, 한국의 IT 기술이 발전돼 있다고 들었고, 거기서 제대로 배워서 나중에 중국에 돌아가서 창업을 하고 싶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좋은 생각이에요, 샤오왕. 특히 IT 분야는 요즘 세계 어디서든 경쟁력이 있죠. 한국에서도 중국 학생들을 위한 글로벌 프로그램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까 잘 준비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요.”

두 번째로 발표한 학생은 메이린(美琳)이었다. 그녀는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저는 K대학교의 한국어교육학과에 가고 싶어요. 나중에 저도 선생님처럼 한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메이린, 정말 반가운 말이네요. 한국어교육학과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수법을 배울 수 있어서, 네가 지금처럼 열심히 한다면 분명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어요.”

세 번째로 발표한 하오천(浩辰)은 조금 독특한 선택을 했다.

“저는 M대학교의 국어국문학과에 관심 있어요. 한국 드라마와 문학이 너무 좋아서, 한국어 자체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배우고 싶어요.”

나는 잠시 미소를 지은 뒤,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다.

“하오천, 국어국문학과는 한국어 자체에 대한 이론과 문학을 중심으로 공부해요. 문학작품을 분석하고, 고전문헌 같은 것도 다루죠. 반면 한국어교육학과는 외국인에게 어떻게 한국어를 가르칠지를 배우는 실용 중심의 학과예요. 방향은 다르지만, 한국어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라는 점은 같죠. 네가 어떤 길을 원하는지 더 고민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네 번째는 루이(睿)였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발표를 시작했다.

“저는 B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를 조사했어요. 중국에서도 영상 편집을 좋아해서 혼자 영상 만드는 걸 즐기는데, 한국의 유튜브나 콘텐츠 산업이 굉장히 발달해 있어서 거기서 배워보고 싶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루이. 요즘은 미디어 분야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어요. 특히 한국은 K-콘텐츠가 강하니까, 실습 중심의 수업도 많고 기회도 많을 거예요. 너처럼 직접 경험하고 싶은 친구에겐 잘 어울리는 선택이에요.”


그날 수업이 끝날 무렵, 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각자 원하는 방향을 조금씩 찾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아직 정하지 못한 친구들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지금처럼 생각하고, 알아보는 과정이에요.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여러분이 어떤 길을 선택하든 제가 도울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 볼게요.”

학생들의 눈빛은 전날보다 조금 더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교실엔 작은 변화의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퇴근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이 선생님, 언제 끝나요? 우리 같이 밥 먹을까요?”

리란이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약간의 경제적 차이를 느껴서 그런지, 매번 조금은 위축되곤 했다. 무슨 화제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도 고민되었는데, 오늘은 이야기할 거리가 많았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말했다.


“좋아요, 이번엔 제가 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아니에요, 선생님이 무슨 돈이 있어요. 내가 살게요. 뭐 먹고 싶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곳에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월급 액수로나 대우로나 따져보면 한 달은커녕 일주일도 있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다는 그 이유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왔다. 그나마 그게 나를 붙잡아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무슨 돈이 있어요’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물론 리란은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겠지만, 문득 현실이 너무 또렷하게 다가왔다.


“혹시 잘 아는 식당이 있나요?”

“아… 잘 모르는구나. 그럼 내가 아는 삼겹살집으로 갑시다.”


역시 선택하기 어려울 때는 상대에게 직접 묻는 것이 시간도 아끼고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게 우리는 학교 정문 앞에서 만나 그녀가 추천한 고깃집으로 향했다.

고깃집 안은 따뜻하고 북적였다. 연기 속에선 익숙한 삼겹살 냄새가 났고, 주방에서 튀어나온 고기 굽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리란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고기를 올리고, 물티슈를 꺼내 내 손에 건넸다.

“이 집, 진짜 맛있어요. 선생님 고기 좋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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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삼겹살은 못 참죠.”

한 조각, 또 한 조각 고기가 익어갈수록 공기 중에 쌓였던 긴장도 조금씩 사라졌다.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노릇노릇 구워진 고기를 쌈에 싸서 한입 넣으니 순간만큼은 복잡한 생각이 다 사라졌다.


“선생님, 힘들죠? 가끔 보면 피곤해 보일 때가 있어요.”

“조금요. 그래도 수업할 땐 잊게 돼요.”


리란은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얼마 전 회의에서 했던 내용들과 내가 새로 알게 된 유학용어들, 학생들에게 숙제로 시켰던 것들 그리고 나의 생각들….

그녀의 눈빛엔 묘한 공감이 깃들어 있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통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날 밤, 나는 고기 냄새가 밴 외투를 입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이 내가 몰랐던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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