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수업을 마치고 정리하려던 순간이었다. 교실 문 옆에 서 있던 김중산이 다가왔다. 평소엔 농담도 잘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웃음소리를 퍼뜨리던 녀석인데, 이날만큼은 표정이 무거웠다.
“선생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그가 의자 하나를 끌어와 조심스럽게 앉았다. 교실 안에는 이미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갔고, 창가에는 늦은 오후 햇살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무슨 일 있니?”
“사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묻어 있었다.
“유학 준비를 해야 할지, 아니면 외삼촌이랑 골프 사업을 같이 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주변에서는 다들 유학이 맞다고 하는데… 제 마음은 잘 모르겠어요.”
나는 잠시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교실에 남은 적막 속에서, 그의 말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다른 학생들이 대학 이름과 전공을 발표하며 설레는 꿈을 이야기하던 며칠 전의 교실 풍경이 떠올랐다. 하지만 중산의 고민은 그것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직접적이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중산아, 사실 유학이라는 것도 결국엔 하나의 과정이야. 왜 가는 줄 아니? 결국 더 나은 직업을 얻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야. 그런데 너는 이미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잖아.”
그는 내 말을 곱씹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외삼촌이랑 둘이서 사업을 한다면,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도 크지. 특히 골프는 원래 돈이 많이 오가는 스포츠잖아. 만약에 제대로 자리 잡으면 수익 면에서는 유학보다 훨씬 빠르고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말을 멈추고 그의 표정을 살폈다. 아직도 갈피를 못 잡는 눈빛이 보였다. 그래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덧붙였다.
“물론, 유학을 가면 네가 원하는 지식과 경험을 얻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건 몇 년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하지. 반면 사업의 기회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어. 특히 가족과 함께라면 더 큰 신뢰로 밀어붙일 수도 있지. 기회라는 건 타이밍이야. 너 스스로 마음을 잘 정해야 한다.”
중산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제가 공부보다 사업을 택한다고 하면… 너무 현실적인가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현실적인 게 나쁜 건 아니야. 오히려 네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정확히 보고 있다는 뜻이지. 중요한 건 네가 어떤 길을 가더라도 책임질 수 있다는 거야.”
그 순간, 그의 표정은 조금은 가벼워진 듯 보였다. 짐을 누군가와 나누어 든 사람처럼.
그와의 상담은 그렇게 끝났다. 나는 교실 불을 끄며 ‘이 아이는 어떤 길을 선택할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시간은 흘러, 몇 년 뒤 우연히 그의 소식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외삼촌과 함께 시작한 그 작은 골프 사업을 택했고, 그 회사는 이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을 만큼 커졌다. 그 회사 이름으로 골프 대회를 개최하고, 언론에 기사로 오를 정도로 성장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내가 건넨 말이 조금이라도 그의 결정에 힘이 되었을까?’
물론 모든 건 그의 노력 덕분이었지만, 그래도 교사로서의 내 조언이 누군가의 인생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람이었다.
그날 밤, 혼자 집에 돌아와 불 꺼진 방 안에서 중산의 이름을 곱씹었다.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꿈을 묻고, 리란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내 현실을 돌아보고, 그리고 이렇게 한 학생의 인생 고민을 함께 나눈 것.
모두가 서로 다른 조각 같지만, 결국은 **‘내가 왜 이곳에 남아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런 순간 때문에 내가 아직 이 자리에 있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