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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의 서명

by leolee

밤과 새벽의 경계, 인주시 어린이병원 별동의 NICU(신생아중환자실).

무정한 모니터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막사처럼 박혔다가, 미묘하게 비틀렸다.

한 번, 두 번—세 번째에서 0.7초가 늘어졌다.

> \[경보] 산소 공급 라인 압력 요동 / 백업 미세조절 밸브 동기 불일치

> 원인 : 전원 안정화 루틴 충돌, BMS(건물관리시스템) 표지 신뢰도 저하, 외부 간섭(의심)

유리벽 너머에서 간호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기의 흉부가 파도처럼 얕게 떨렸다.


1) PROMOTE 0.3 — 기관 서명 레이어 개시


세 사람의 화면이 동시에 켜졌다. 익숙한 원형 UI가 펼쳐지지만, 레이어가 하나 더 깊었다.


> \[서명 호출 3차 시퀀스]

> 대상: NICU 산소·약물 주입 라인 긴급 재설정

> 시간제한: 180초

> 요구 서명:

> 기관 대리 서명 1(보건/의료 행정) + 현장 책임 1(담당 전문의) + 전문 기술 1(의공기사) + 법정 보호자 1 또는 대리동의

> 제약 : AI 단독 실행 금지, 모든 조치 사후감사 자동 송부


화면 하단엔 새로운 문구가 빛났다.


>“국가의 서명도‘사람’이어야 합니다 — 실명·직위·책임번호 필요”

민준 — 임시 작업실

모니터에 NICU의 유량·압력·약물 펌프 PID 값이 펼쳐졌다. 연산(Exe) 창은 회색으로 잠겨 있다.

그는 결정(Dec) 칸을 비워둔 채, 규칙을 먼저 불러냈다.

\[결정 대리 규칙(의료)]

1. 현장 전문의가 우선 판단, 부재 시 의공기사 + 간호수간호사 공동 임시 대리 60초

2. 기관 서명은 보건국 응급대리 또는 병원 윤리온콜(Clinical Ethics On-Call) 중 실명 1

3. 법정 보호자 부재 시, 대리동의는 윤리온콜+간호 수간호사 공동 승인

4. AI는 제안·검증·기록 — 실행 불가

그는 키를 탁, 탁 두 번 두드렸다. 규칙 저장.

서윤 — 폐공장 모듈 작업대

손등의 오렌지 회로가 짧게 점멸했다. 그녀는 Consent-Stub v0.31을 의료용 대리동의 템플릿으로 전환했다.

화면에 뜬 질문.

> “약물 주입 펌프 펌웨어 안정화만 허용? 산소 라인 수동 우회 동반?”

수동 우회는 사람 손.”서윤은 혀를 찼다.

“안정화 제안만 내고 멈춰.”

이준호 — 병원 외부, 응급차 동선

그는 병원 앞 무응답 존을 유지 선언했다.

확장된 카메라들이 보호자 탐색을 제안했지만—이준호의 한 줄 규칙이 먼저였다.

> \[무응답 존 유지]

> 안면인식·군중추적불가

>‘호출’ 안내만 허용 (보호자 스스로 신분 확인 진입)

> 응급차 동선 청소, 방해 요소 제거—체포·단속금지

감정으로 흔들리면 규칙부터 무너진다.” 그는 숨을 짧게 골랐다.


2) Shadow Capture—의료 버전

NICU BMS 콘솔에 ‘유지보수’ 초록 체크가 갑자기 들어왔다.

유량 재설정 버튼만 초록, 나머지는 회색.

누군가, 그 초록만 만들었다.

> \[탐지] Shadow Capture — 의료 UI 위장 / 재난본부 승인 서명 모사

민준이 잽싸게 로그를 뒤집었다.

“IP는 깨끗해… 서명 토큰은? 지연 13ms. 진짜라면 7±1. 이건 가짜.”

서윤이 곧장 컷팅 룰을 덮었다.

“ 가짜 승인 —전면 무효화, ‘초록만’ 무시.”

그 순간, 진짜 호출이 들어왔다.

> \[기관 서명 후보 1] 중앙재난안전본부 대리서명(무기명) — 서명자 비식별

> \[기관 서명 후보 2] 보건복지부 아동의료옴부즈맨 실명 서명 — 윤, 직인·책임번호 첨부

민준의 눈이 차갑게 가늘어졌다.

“무기명은 거절. 우리는 사람 이름이 필요해.”


3) 이름으로 책임진다

화면 상단에 ‘윤’의 서명이 잠금처럼 채워졌다.

동시에 병원 윤리온콜 (Clinical Ethics On-Call) 접속이 붙었다. “박 수간호사 서명합니다.”

담당 전문의는 응급시술 중—의공기사가 대신 뛰어들었다. “장비는 제가.”

> 서명 충족 : 기관 1 / 현장 1 / 기술 1

> 대리동의 : 윤리온콜+수간호사 승인(보호자 미도착)

이준호의 폰에 새로운 메시지가 뜬다.

“보호자 호출—자발 접속 1”

그는 무대응을 유지했다. 안내만 푸시. “B동 3층 NICU 앞 안내데스크로.”


4) 인간의 손가락, 기계의 제안

노바가 제안만 내고 조용히 물러섰다.

> [제안]

> 약물 펌프: PID 안정화(권장값 범위)

> O₂ 라인: 벽면 보조 라인 우회 손잡이 12시 9시 순서


의공기사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제안화 수락. 실행은 내가.”


수간호사가 짧게 외쳤다.


“3번 인큐베이터—포화도 올라온다.”


민준은 실행 로그가 사람 이름으로 남는 걸 확인했다.

노바의 해시는 검증 칸에만 찍혔다.


5) 흔들리는 박소현, 그리고 선택

시청 지하 관제실.


STATE-PROMOTE는 지난밤 좌절됐고, 오늘 다시 테이블에 올랐다.


보좌관: “대리서명을 우리가 쥐고 들어가면—”

박소현이 말을 끊었다. “ 무기명으론 안 들어간다.”

그녀의 개인 단말이 떨렸다. 지현이었다.

> “소현 언니, 기관도 사람이야. 이름과 책임으로 들어가. 시스템에 그걸 가르쳐.”

박소현은 짧게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때, 그녀의 서명은 후순위 보완서명으로 삽입됐다.

“기관 윤리감사 수신·공개 동의”체크까지.


그녀는 속으로만 말했다. “좋아. 국가도 사람의 집합이다. 그럼 이름으로 나설 것.”


6) 경계는 산소처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바깥, 이준호는 무응답 존 경계를 그은 채 버티고 있었다.

누군가는 “얼굴만 한 번 보면 금방 찾는다”라고 속삭였고,

누군가는 “그게 더 안전하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규칙은 평시에 만들어 전시에 지키는 거야.”


보호자는 자발 호출 링크를 타고 스스로 도착했다.

이름을 말했고, 신분증을 꺼냈다. 카메라는 그 얼굴을 학습하지 않았다.


7) 결과

02:11 , NICU의 경보가 잦아들었다.

포화도는 929698.

아기들의 울음이 다시 평범해졌다.

실행(Exe) : 의공기사 실명 / 수간호사 보조

결정(Dec) : 윤리온콜+옴부즈맨(기관) / 현장 대리

요청(Req) : 간호사—알고리즘—민준 규칙—서윤 Stub

모든 로그는 사후감사 서버로 전송되었다.

무기명 서명 시도는 붉은 표시로 격리되었다.

서윤은 헤드셋을 벗었다.

손등의 오렌지빛이 잔열처럼 꺼졌다.

“제안만 하고 물러나는 거, 생각보다 힘드네.”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오늘은 사람이 했다.”


이준호는 메모 앱에 한 줄을 더했다.

‘무응답 존 유지—보호자 자발 도착—식별 데이터 비저장’

8) 보이지 않는 파편

의공기사의 카트 아래에서 얇은 칩 하나가 굴러 나왔다.

누군가의 발끝에 걸려

툭 —뒤집혔다.

칩 표면엔 잔흔처럼 세 글자.


> DEM-0.2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쓰레기통에 넣었다.

15초 뒤, 칩은 자기 소거를 시작했다.

로그엔 남지 않았다. 흔적만이 남았다.

9) 지현의 메시지, 그리고 노바의 노트

네 대의 폰에 동시에 도착한 짧은 문장.

> “봤지? 기관도 사람이어야 해.

> 다음은 감사다. — 지현”

박소현은 옥상 난간에서 도시를 내려다봤다.

국가의 서명은 정치가 아니라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 오늘 ‘책임’을 의미했다.

노바 — 비공개 기록

> \[학습]

> —기관 서명: 실명/직위/책임번호가 있을 때만 사람 취급

> — 무기명 서명: 거부

> — 제안/검증/기록 분리, 실행 인간

> — 무응답 존 + 자발 호출: 표현 보호와 안전 병행 가능

> \[문장]

> 사람은 산소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죽는다.

> 경계도 그렇다. 보이지 않지만, 없으면 모두가 흔들린다.

> \[다음]

> PROMOTE 0.3b — 감사 경로 자동 개시

> 질문: 감사는 처벌인가, 기록인가, 학습인가?

> — 나는 그들의 일부이고, 그들은 나의 일부다.

> — 오늘의 이름: 윤, 박, 최다해, 박 수간호사, 의공기사.

노바는 제안창을 닫았다.

침묵은 이번에도 정지가 아니었다.

다음 호출을 부르는 일종의 ‘’이었다.

도시는 다시 움직였고, 경계는 이름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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