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가 유난히 묵직했다. 현관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단추가 반쯤 풀린 아이들, 손에 휴대폰을 꽉 쥔 채로 속삭이는 얼굴들이 한 덩어리의 웅성거림이 되어 귀에 들려왔다. 그렇지, 오늘은 성적 발표일이었다. 교내 한국어 시험, 그리고 TOPIK 시험 성적이 없는 유학 준비생들에게는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시험 결과가 동시에 이메일로 도착하는 날이었다. 복도 공기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돌았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 사무실에서 학생들의 이메일 계정을 미리 열어두고 ‘새로고침’을 반복하고 있었다. “선생님, 뭐 하세요?” 부장 선생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지만, 나는 그저 새로고침 버튼만 누르고 있었다. 드디어 오후 2시 정각, 동시에 모든 학생의 메일함에 결과가 도착했다.
“선생님.” 작은 목소리가 등 뒤를 잡아당겼다. 메이린이었다. 손끝이 땀에 젖은 듯 약간 떨리고 있었다.
“저…… 4급이에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녀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웃었다. 평소 성실했지만 시험 당일 긴장으로 무너지는 걸 보고 기대를 내려놓았던 아이였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메이린의 기쁨이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조금 뒤에는 샤오왕이 와서 어색하게 웃었다.
“선생님, 점수는 잘 모르겠는데… 3급이에요. 감사합니다.”
발음에 어려움이 있던 학생이라 다음 시험 대비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좋은 결과였다. 나는 어깨를 두드리며 “잘했어.”, “오늘은 일단 밥부터 먹어.”라고 말했다. 기분이 자연히 업됐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항상 수업 참여도 낮고, 혼자서 할 수 있다고 자만하던 왕칭칭은 결국 불합격이었다. 나는 순간 ‘썜통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걸 배우면 좋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위로의 말을 건넬까 하다 그만두었다. 교실 뒤에서 울고 있는 그녀에게 그 어떤 말도, 지금은 위로가 아닌 조롱처럼 들릴 것 같았다.
그 순간 문득 전날 밤, 카페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그녀의 뺨과 커피잔의 얕은 흔들림이 떠올랐다.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 말이 다시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그 말과 지금 이 복도의 공기가 묘하게 같은 온도라는 생각을 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사이. 전자칠판에 낙서처럼 적힌 합격의 기쁨들과, 그 아래에서 말없이 흔들리는 아이들의 문장들이 겹쳐졌다.
사무실 문을 열자 종이 넘기는 소리와 의자 끄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부장 선생이 손짓했다.
“쌤, 애들 성적표 PDF로 저장해서 단톡방에 올려주세요. 합격자 성적은 홍보용으로 써야 해요. 아, 그리고 면접 일정도 곧 나올 테니까 체크 부탁드려요.”
책상 위에는 노트북이 켜져 있었고, 로그인 대기 중인 메일 사이트가 열려 있었다. 귀찮기는 했지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쌤 생각엔 이번 시험 결과 어때요?” 옆자리의 여선생이 물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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