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한여름 오후 3시 10분, 체감 36도. 놀이공원 ‘바이킹’ 대기 시간 안내판 70분.
•파라솔 그림자 짧고, 바닥은 열기로 물결. 선크림·팝콘·땀 냄새가 섞임.
•스피커: “탑승 전 휴대전화는 보관함에— 안전바 확인 후 손을 흔들어주세요.”
•키 제한 120cm. 측정봉 앞, 아이 울음 한 차례.
•큐패스 전용 게이트로 수시 입장 발생(대기열 웅성).
•얼음부족 안내. 손선풍기, 부채, 생수병이 줄을 이룸.
01 김나연(16, 고2 / 친구·셀카·겁 많은 용기)
바이킹은 멀리서 보면 장난감인데, 가까이 오면 하늘을 먹는 입처럼 보인다. 친구랑 ‘무서우면 눈 감자’고 약속했는데, 줄은 자꾸 우리를 앞쪽으로 밀었다. 선크림이 이마에서 흘러내려 눈이 따갑다. 앞에서 키 재던 꼬마가 울었다. “120cm, 조금만 더 크면 되겠다.” 스태프의 말이 이상하게 위로 같았다. 큐패스 줄로 어떤 언니가 스윽 지나가자 뒤에서 “돈이면 다야?”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말이 무섭기도, 부럽기도 했다. 우리도 언젠가 시간을 돈처럼 쓰게 될까. 휴대폰으로 하늘을 찍었더니 구름이 배처럼 떠 있다. 바이킹이 올라갔다가 잠깐 멈출 때, 사람들의 발바닥이 동시에 하늘을 가리킨다. 그 순간을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친구가 말했다. “야, 우리 울면 안 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울지 않겠다는 약속은 사실 울 수 있다는 용기를 빌리는 주문 같았다.
오늘의 내 해석: 줄은 겁을 키우지만, 기다림은 용기의 길이를 재준다.
02 정하욱(29, 놀이기구 운영요원 / 안전바·루틴·열사 경계)
“왼쪽 손 들어주세요, 안전바 밀어봅니다.” 하루에 수십 번 같은 문장을 말한다. 해가 정면에서 들이치면 스피커보다 내 목소리가 먼저 지친다. 바닥 열이 올라와 운동화 밑창이 흐물거리는 기분. 대기줄은 길수록 설명을 더 자주 해줘야 한다. 기다림의 적은 정보 부족이니까. 큐패스 게이트를 통과할 때마다 뒤쪽에서 미세한 한숨이 올라온다. 규정은 규정이고, 정서는 정서다. 나는 그 사이에 서 있다. 안전바를 누르다 보면 ‘괜찮습니다’라는 말이 입안에서 칠해진다. 키 제한에서 돌아선 아이에게 스티커 하나를 건네면 울음이 금방 ‘내년’으로 미뤄진다. ‘다음 회차 탑승 준비!’ 버튼을 누르기 전, 나는 한번 더 사람들을 본다. 누군가는 오늘의 스릴을, 누군가는 오늘의 체면을, 누군가는 오늘의 위안을 타러 왔다.
오늘의 내 해석: 놀이기구가 움직이기 전에, 사람들의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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