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아픔,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새로운 사람

by leolee

TJ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느꼈던 소회는 내가 미처 몰랐던 감정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와의 대화에서 얻은 성취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의 공허함도 느껴졌다. 친구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아 가고 있었다. 새로운 관계에 대한 설렘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아가며, TJ와의 관계가 단순한 동료를 넘어선 깊은 인연으로 다가왔다. 그날 TJ는 내게 시카고에 대한, 그리고 자신이 느끼는 이방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나에게 속삭였다.

그러던 어느 날, TJ에게 비보가 찾아왔다. TJ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숙소에 홀로 남겨진 TJ는 깊은 슬픔 속에 잠겨 있었다. 나는 수업을 중단하고 서둘러 그의 숙소로 향했다. 나는 그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미국까지 다녀오는데 비행기 표의 가격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번거로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뮨이다. 번개같이 문을 열고 TJ의 방에 들어서니, 그는 무겁게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그의 옆에 조용히 앉아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마. 여긴 중국이지만, 네 곁에 내가 있으니까 힘들 때는 언제든 얘기해."

그리고 포옹을 했다

TJ는 나를 바라보더니, 마침내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그날의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슬픔과 위로를 나누며, 친구 이상의 관계로 발전했다. 중국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가족 같은 존재가 되어 가는 순간이었다.

이후로 우리는 더 깊은 유대감을 쌓으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몇 달뒤 나에게도 큰 변화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녁반에서 있었던 일이다.

"선생님 여자 친구 있어요?"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었다. 그녀는 벨라라는 중국인 학생이었는데, 일본어를 잘하지만 한국어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수업이 끝나면 조심스레 내 곁에 다가와 질문을 건네며 조금씩 나와의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아직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 감정이지만, 나 또한 그 다가옴을 내심 반기고 있는 것 같았다. 벨라의 따뜻한 미소와 상냥한 말투는 칭다오에서의 공허함을 잠시 잊게 해 주었다.


"벨라 같은 학생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은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지더라고, " 나는 TJ에게 말했다.

TJ는 웃음을 띠며, "이제 슬슬 새로운 인연을 찾는 건가? 너도 준비된 것 같네, "라고 농담 섞인 말을 던졌다. 그 당시에는 TJ도 인터넷으로 사귀게 된 시안의 한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부러운 면도 없지 않았지만 마음 한켠에 새로운 인연에 대한 기대감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벨라가 다가오는 이 변화는, TJ와 나에게 서로의 삶이 더 풍부해지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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