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TJ를 만나기 전에 잠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 룸메이트인 TJ는 미국인 친구인데, 그는 우리 건물 아래층에 사는 라이언이라는 미국인과도 이미 친분이 있었다. 라이언은 중국인 부인을 둔 남자였고, 나와는 단순한 인사만 주고받던 사이였다. 그 역시 우리 학교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잘 몰랐다.
TJ는 라이언에 대해 먼저 알고 있었다.
“야, 너 라이언 아냐? 너희 바로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야,”
TJ가 나에게 말했다.
“아래층? 라이언이 우리 바로 아래에 산다고?”
나는 놀라며 되물었다.
“응, 이 동네는 작아. 알게 모르게 서로 얽혀 있어,”
TJ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야.. 이제 칭다오 박사가 다 됐구나. 나보다 더잘 알아”
그렇게 TJ의 소개로 라이언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라이언은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TJ와 함께였다.
라이언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미국식 장식과 아늑한 분위기에 감탄했다. 부인의 취향이 묻어나는 듯한 예쁜 소파와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특히 눈에 띄었다. 라이언은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라이언은 직접 만든 미국식 가정식 햄버거를 준비해 주었다. 그가 준비한 햄버거는 패티부터 빵까지 모든 게 수제였다.
“이거 직접 만든 거라고?”
나는 햄버거를 베어 물며 감탄했다.
“와, 이 패티 진짜 맛있네.”
“당연하지. 이건 내 자랑이야,”
라이언이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TJ도 웃으며 말했다.
“이거 먹으니 옛날 생각나네. 내가 부인과 연애하던 시절, 이 햄버거로 그녀를 꼬셨거든.”
“정말? 어떻게?” 나는 궁금해졌다.
라이언은 과거를 떠올리듯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영어 학원에서 만났어. 내가 원어민 교사였고, 그녀는 조교였지. 처음엔 그냥 동료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끌리기 시작했어.”
TJ는 장난스럽게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러브 스토리! 어서 계속해봐.”
라이언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퇴근 후에도 함께 시간을 보냈어. 처음엔 그냥 동료로서의 만남이었는데, 어느 순간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지. 데이트를 하다가도 이 햄버거를 만들었는데, 그날 이후로 그녀는 나에게 빠져들었다고 하더라고.”
“햄버거로 꼬셨다니, 대단한데?”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뭐, 사랑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 거지.”
라이언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의 눈빛엔 부인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따뜻함이 묻어났다.
그렇게 라이언이 과거를 회상하며 웃음을 터뜨리자, TJ도 비슷한 경험을 떠올린 듯 웃었다.
“나도 옛날에 비슷한 상황이 있었어. 내 첫 데이트 때, 그녀에게 피자를 만들어줬는데, 다행히도 그 피자가 성공적이었지.”
TJ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녀는 그 이후로 매주 피자를 만들어 달라고 했어.”
그렇게 우리는 미국식 가정식 햄버거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TJ와 나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라이언의 러브 스토리에 빠져들어 있었다.
라이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행복한 결혼 이야기가 내 상황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전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때도 저렇게 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바로 그때,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 잠깐만,”
나는 핸드폰 화면을 확인했다. 익숙한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벨라였다.
‘왜 벨라가 나에게 전화하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을지 말지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벨라의 목소리는 분명히 화가 나 있었지만, 그 속에는 눈물 섞인 떨림도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감정이 혼란스러움을 나타내고 있음을 느꼈다.
“네가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었어 다 너 때문이야!!”
그녀가 흐느끼듯 말했다.
“벨라, 도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몇 초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TJ와 라이언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TJ는 조용히 손짓하며 물었다.
“괜찮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벨라와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지냈고 마무리됐는데.. 무슨 일이 그녀를 이렇게 화나게 만들었을까?
라이언은 TJ에게 모두에게 다 들리지만 형식적으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연애 문제인 것 같아.”
TJ는 조용히 맞장구쳤다.
“응, 연애 문제는 항상 복잡하지.ㅋ”
라이언의 행복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벨라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방금 전 그 전화가 가져온 무거운 불안감에 눌려 있었다.
TJ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벨라와의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네. 네가 힘들어 보이는 걸 알아, 뭐든 도와줄게.”
라이언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내가 겪었던 일과 비슷해 보이네. 연애 문제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야. 하지만 너무 괴로워하지 마, 친구.”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우리는 잘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나는 그 순간, 라이언의 이야기가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깨달았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벨라는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우리, 여기서 끝내는 게 맞을 거야. 너도,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