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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lee Nov 17. 2024

친구 사이의 경계: 장난과 예의

라이언의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그는 양손에 아령을 들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물었다.

“와, 라이언! 여기서 운동하는 거야? 헬스장 안 다니고?”


라이언이 웃으며 말했다.


 “응, 중국에서 말이 잘 안 통해서 헬스장은 잘 못 가. 대신 집에서 운동하고 있어. 같이 해볼래?”


 “그래, 나도 좀 배워보고 싶어.”

우리는 헬스장처럼 한 세트씩 돌아가며 운동을 시작했다. 라이언은 자세 교정부터 시작해서 스케줄 짜는 법, 그리고 식단까지 여러 가지를 알려주었다.


 “운동은 꾸준함이 제일 중요해,” 라이언이 말했다.

“특히 식단 관리가 절반이야. 내가 요즘 탄수화물 줄이고 단백질 위주로 먹고 있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했지만, 솔직히 꾸준히 하지는 못했다. 반면에 라이언은 정말 열심히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몸은 점점 더 탄탄해지고 있었다.


 며칠 뒤, 나는 조깅하러 나갔다가 러닝복을 입은 라이언을 길에서 만났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라이언! 어디 갔다 오는 길이야?”


내가 웃으며 물었다.


라이언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뛰고 오는 길이야. 이제 집으로 들어가려고.”


나는 그저 장난스러운 기분에 그의 배를 툭 치며 말했다.


“오, 그래도 배가 좀 나왔네?”

그 순간, 라이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라이언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상처받은 자존심이 엿보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는 등을 돌려 빠르게 뛰어갔다. 나는 어쩔 줄 몰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이 밀려왔다.


며칠이 지나도 라이언에게서 아무 연락이 없었다. 평소라면 간단한 메시지라도 주고받았을 텐데, 이번에는 완전히 연락이 끊긴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라이언의 부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안녕 레오(나의 영어이름), 잘 지내고 있?”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어딘가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잘 지내고 있어. 그런데 무슨 일?”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라이언이 요 며칠 동안 많이 화가 나 있어. 네가 그의 배를 살짝 친 그 일 때문에 모욕감을 느꼈대. 그날 이후로 계속 화를 삭이지 못하고 있어. 한 대 때리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 순간, 나는 내 실수의 무게를 온전히 깨달았다. 내가 장난으로 한 행동이 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그제야 뼈저리게 느꼈다.


‘아, 내가 정말 큰 잘못을 했구나. 그저 농담이 아니었구나.’


 나는 바로 라이언의 집으로 내려갔다. 초인종을 누르며 손에 땀이 맺히는 걸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언이 문을 열었고, 나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라이언, 정말 미안해. 내가 그렇게 화날 줄은 전혀 몰랐어. 변명할 여지도 없어, 내 잘못이야. 제발 내 사과를 받아줘.”


 라이언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내 가슴은 점점 더 조여왔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고, 그 눈빛에는 깊은 실망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한참 동안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다 마침내, 라이언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에서 자랐어. 네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너의 행동은 나에게 정말 큰 상처를 줬어. 내 자존심을 짓밟는 무례한 행동이었어. 솔직히,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라이언의 말을 들으며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고통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라이언이 말을 이었다.


“나도 외국에서 지내는 게 쉽지 않아. 너도 같은 입장이라는 걸 알아. 그래서 이번 한 번은 용서할게. 하지만 다음부터는 제발 조심해 줘, 친구.”


나는 눈물이 핑 돌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 라이언.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 없도록 할게.”


라이언은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래, 이제 그만두고 우리 저녁 먹으러 가자. 너도 배고플 텐데.”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올라온 후, 나는 TJ에게 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 정말 큰 실수 했어, TJ. 라이언 배를 툭 치면서 농담했더니, 완전 화가 났더라고.”


TJ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미국에서는 친한 친구 사이여도 상대방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날 수 있어. 특히 배처럼 신체적인 부위는 개인적인 공간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장난스럽게라도 손을 대는 건 위험해. 반면 한국에서는 친근함의 표시일 수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상대방의 자존심이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어.”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맞아, 정말 맞아 죽지 않은 게 다행이지. 앞으로는 내 감정을 앞세워서 행동하지 않도록 조심할게.”


TJ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모두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지. 중요한 건 네가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려고 하는 거야.”


나는 TJ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는 모두 다른 문화에서 자라왔고, 그 차이를 이해하고 배워가는 게 중요하구나.’


이번 사건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나는 내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다. 앞으로는 내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며 행동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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