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저녁, 우리는 집에서 소파에 앉아 간단한 저녁을 먹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사소한 이야기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중, 세라가 무심하게 말했다.
“나 신용카드 빚 좀 있어.”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 말이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뭐라고? 신용카드 빚?”
그녀는 마치 사소한 일이라도 이야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많이는 아니야. 그냥 좀 있긴 한데.”
그녀의 태도는 평소와 달랐다. 자신감 넘치고 독립적이던 그녀가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걸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마나 되는 건데? 혹시 내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꼭 그렇게까지 알아야 돼?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문제야.”
그 태도에 나는 당황했다.
“아니, 세라. 그런 게 아니잖아. 우리가 서로 돕는 사이인데, 금액이 크면 나도 준비해야 할 거 아니야.”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말끝을 흐렸다.
“생각보다 크지도 않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더 묻지 않았지만, 마음속엔 뭔가 불편한 감정이 남았다. 왜 나에게 솔직히 말하지 않는 걸까? 우리 관계에 문제가 있는 걸까?
며칠 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카페에서 만나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대화를 나누던 중, 그녀는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나 상하이로 가려고 해.”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해졌다. 상하이? 갑자기? 이건 무슨 이야기지?
“뭐라고? 상하이에 간다고? 갑자기?”
“응, 일 때문에. 좋은 기회가 생겼어.”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너랑 상의도 없이 그런 결정을 했어?”
“미안해. 그런데 이미 결정된 거야. 내 커리어를 위해 정말 중요한 기회라서.”
그녀의 말은 확고해 보였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그럼 얼마나 있을 건데?”
“일단 몇 달? 상황에 따라 더 길어질 수도 있어.”
그녀의 대답에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힘이 없었다. 상하이로 가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완강했고, 나는 더 이상 설득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는 본의 아니게 장거리 연애를 시작했다. 매일 화상통화를 했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녀가 상하이의 일상을 공유할수록 나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는 듯했다. 통화가 끝난 후면 항상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세라, 이렇게 통화만 하는 거... 뭔가 부족해.” 어느 날, 내가 말했다.
“나도 알아. 근데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그녀는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나의 답답함을 해결해주진 못했다.
한 번은 통화 중에 서로 크게 다퉜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때문이었다.
“너 요즘 나한테 거리 두는 것 같아. 뭐 숨기는 거 있어?”
그녀는 즉각 반발했다.
“뭐? 내가 뭘 숨긴다는 거야? 너 왜 이래?”
“아니, 그냥... 너랑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네 인생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그녀는 화를 내며 통화를 끊었다. 나도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내려놓았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녀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급히 비행기를 예약했다. 상하이 공항에 내린 나는 그녀가 일하는 근처 카페로 찾아갔다. 그녀는 내가 거기 있는 걸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왜 여기 있어?”
“사과하러 왔어. 어제 내가 너무 예민했어. 미안해.”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미안해. 상하이에 오니까 모든 게 낯설어서 더 예민해진 것 같아.”
우리는 그날 밤 서로의 감정을 털어놨다. 그녀는 상하이에서 느끼는 압박감, 내가 그녀를 믿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너랑 이야기하는 게 어렵진 않아. 그런데 나도 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싶었어. 그래서 말 못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앞으로는 이런 거 혼자 안고 가지 말자. 너도 나도 힘들어질 것 같아.”
하지만 그날 이후에도, 나의 마음속엔 그녀를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남아 있었다. 신용카드 빚 이야기를 시작으로 생긴 거리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듯했다.
‘우리는 정말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점점 멀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