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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퍼즐

by leolee

연구소의 오전은 어느 날과 같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시작됐다. 연구소는 외벽이 두꺼운 금속으로 둘러싸인 구조였고, 복도를 따라 늘어선 모니터와 장비들은 규칙적인 소음과 빛을 내뿜으며 기계적인 느낌을 더했다. 이곳의 정돈된 환경은 겉보기에 안정적이었지만, 민준의 눈에는 불안정한 흐름이 느껴졌다.


“요즘 보안 문제 때문에 더 까다로워졌어.”

“응, 어제도 침입 신호가 있었다더라. 하지만 결국 추적하지 못했대.”


복도를 지나던 동료들의 대화는 민준의 귀에 박혔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동료들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단순한 침입일 리가 없어... 이건 더 큰일이 있을 거야.’

책상 앞에 앉은 민준은 모니터를 켜고 전날 작업하던 프로젝트 파일을 열었다. 복잡한 그래프와 데이터 흐름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여기서 멈출 순 없어.”

그는 데이터를 검토하며 내부 기록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결심했다.


폐공장의 작업실은 여전히 황량했다. 낡은 철골구조와 먼지로 가득한 바닥, 그리고 빗물이 고여 있는 구석은 이곳이 오랫동안 방치된 공간임을 보여줬다.


그 중심에서 서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전날 확보한 연구소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었다.

“캡슐 프로젝트...”

그녀는 화면을 응시하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데이터를 비교하던 중, 그녀는 과거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와 민준은 같은 컴퓨터 학원을 다녔다. 서로 다른 반에서 공부했지만, 두 반의 우수한 학생들은 서로의 코딩 패턴을 분석하며 학원 선생님의 과제를 수행하곤 했다.


‘내 코드를 이해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지... 그때 민준이의 이름을 보고 꽤 놀랐었는데.’

서윤은 잠시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야.”

그녀는 데이터를 다시 집중적으로 분석하며 캡슐 프로젝트가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는 확신을 키웠다.


연구소 보안팀은 어두운 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대형 모니터에는 연구소 내부 네트워크의 경로가 지도처럼 펼쳐져 있었다.

“침입자는 시스템의 약점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보안팀장은 모니터를 응시하며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외부 침입 신호가 내부 네트워크와 연결될 때마다 사라져. 그리고 다시 나타나기를 반복해. 누군가 내부 구조를 알고 있다는 말이야.”

팀원 중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내부 협력자가 있는 건 아닐까요?”


보안팀장은 그 말을 잠시 곱씹었다.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으로선 증거가 없어. 로그 기록을 더 깊이 분석해야겠군.”


그러나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침입자의 움직임이 이미 예상 경로 밖으로 넘어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민준은 자신이 가진 권한만으로는 이 사건의 실체를 밝혀낼 수 없음을 느꼈다. 그는 결단을 내리고 연구소 보안 로그에 몰래 접근하기로 했다.


“이건 위험한 일이지만...”

그는 자신의 모니터에 보안 로그를 띄우며 코드를 입력했다.


로그 데이터를 열람하던 중, 민준은 낯설지만 익숙한 패턴을 발견했다.

“이건...”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초등학교 시절, 학원에서 처음 봤던 서윤의 독특한 코딩 스타일이 떠올랐다. 당시 그녀는 데이터를 단순히 처리하는 대신, 코드 속에서 일정한 규칙과 변칙적인 패턴을 동시에 사용했다.


‘설마, 이게 서윤의 흔적이라고?’

그는 의심스러웠지만, 곧 머리를 흔들었다.

“말도 안 돼. 너무 오래된 기억일 뿐이야.”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서 그 패턴은 떠나지 않았다.


서윤은 폐공장에서 데이터를 닫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더 이상 원거리에서 데이터를 확보하는 걸로는 부족해.”


그녀는 작업실의 어둠 속에서 필요한 장비를 꺼내기 시작했다. 위장 장치와 작은 전자기기들이 담긴 가방을 정리하며, 그녀는 연구소 내부로 침투할 계획을 세웠다.

“민준... 네가 여전히 그곳에 있을 줄은 몰랐어.”

그녀는 자신의 결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면서도, 망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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