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윤의 선택

by leolee

서윤은 작업실 한쪽에 앉아 있었다. 후줄근한 후드티 소매가 책상 끝에 걸려 있었고, 손에는 얇은 장갑이 씌워져 있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장갑을 손에서 떼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금빛 칩이 손바닥을 통과한 후, 그녀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디지털 흐름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었다. 그 힘은 마치 그녀의 의지를 넘어서는 또 다른 생명체 같았다. 장갑은 단순한 방어막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과 세상을 분리하기 위한 마지막 장벽이었다.

모니터의 빛이 그녀의 얼굴을 은은하게 비췄다. 작업실은 고요했지만, 머릿속은 그렇지 않았다. 서윤은 손끝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장갑을 끼고 있을 때도 디지털 흐름이 그녀의 신경망을 타고 퍼지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감각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낯설고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잠시 지민의 말을 떠올렸다.


“서윤, 네가 이걸 다룰 수 없다면, 너 자신이 먼저 이 능력에 지배당할 거야. 하지만, 통제할 수 있다면 이건 네 편이 될 수도 있어.”


지민의 차분한 목소리는 마치 경고처럼 그녀의 마음 깊숙이 박혀 있었다.

장갑을 낀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서윤은 자신에게 질문했다.


“정말 이걸 내가 다룰 수 있을까? 아니면 이 능력이 나를 삼켜버릴까?”


작업실에 놓여 있는 오래된 장비들이 디지털 신호에 반응하며 미세하게 깜빡였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드라이브를 손으로 잡았다. 장갑을 벗지 않으면 단순한 물건에 불과했지만, 장갑을 벗는 순간 그것은 그녀와 연결될 것이다.


결심한 듯, 서윤은 한쪽 손의 장갑을 천천히 벗었다. 손바닥에서 미세하게 퍼져 나오는 금빛 흐름이 드라이브와 연결되었다. 그녀의 뇌는 즉시 데이터의 파편들을 읽어 들이기 시작했다. 신경망처럼 퍼져나가는 데이터가 그녀의 의식과 하나가 되었다.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밀려왔고, 그 흐름을 따라가려다 보니 숨이 가빠졌다. 서윤은 곧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녀의 손에서 금빛 흐름이 차츰 사라졌고, 주변의 기기들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걸… 통제해야 해.”


그녀는 힘겹게 속삭였다. 데이터가 그녀에게 반응했다는 것은 능력을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 능력의 주인이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서윤은 장갑을 다시 끼며 창밖을 바라봤다. 어두운 도시의 전경이 그녀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차가운 하늘과 희미한 불빛들은 그녀에게 낯설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 능력을 복수에만 쓰기엔…”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손끝에 남은 감각을 느꼈다.

그녀가 기억하는 과거는 정의와 복수가 뒤섞인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능력은 무겁고, 책임은 더 무거웠다.


그녀는 다시 작업대로 돌아왔다. 오래된 서버 하나를 켜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이제는 작은 실험부터 시작해야 했다. 디지털 흐름을 따라 능력을 조심스럽게 사용하며 데이터를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몇 분 후, 서윤은 자신이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엔 작은 신호들이었지만, 점차 데이터의 흐름이 그녀의 의도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모니터에 알 수 없는 신호가 감지되었다. 서윤은 신경질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며 신호를 분석하려 했다.


“누군가 나를 주시하고 있어…”


그녀는 화면에 떠오른 데이터들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모니터에는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서윤은 잠시 굳어 있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싸움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그녀는 손끝의 미세한 떨림을 느끼며 다시 한번 결심했다.


“내가 먼저 통제하지 않으면, 결국엔 이 능력이 나를 집어삼키겠지.”


그녀는 화면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이 능력을 내가 선택한 도구로 만들겠어. 그렇게 된다면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거야.”

keyword
이전 07화조력자와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