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은 작업실 한쪽에 몸을 기댄 채 손끝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떨림을 의식하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공간 속, 벽에는 금이 가고 깜빡이는 모니터 불빛이 이따금씩 서윤의 얼굴을 비췄다.
장갑을 끼고 있어도 손 안에서 느껴지는 전류 같은 감각은 여전히 그녀를 흔들어 놓았다. 장갑을 벗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벗고 싶지 않은 두려움 사이에서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장갑을 벗고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금빛의 빛줄기가 그녀의 손끝에서 퍼져나가며 주변 기기들과 묘하게 공명하는 모습을 보고, 서윤은 자신의 능력이 단순히 데이터 해석의 도구를 넘어섰음을 직감했다.
모니터 앞에 앉아 파일을 열던 그녀는 '캡슐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암호화된 데이터를 발견했다. 파일 속에 담긴 단서들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해제가 어러워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왼손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인간의 신경망과 AI의 융합을 통해 자유를 통제하려는 계획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날수록, 서윤의 손끝은 떨림을 넘어 차가운 땀으로 젖어갔다.스스로 데이터를 풀어내는 능력이 이미 자신을 통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그녀를 옥죄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스스로를 다잡으려 했지만, 금빛으로 반짝이는 손끝이 그녀를 더 깊은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다. "이걸 멈추는 건 나밖에 없어." 그녀는 속으로 다짐했지만, 그 다짐조차 그녀에게 무겁게 다가왔다.
반면, 민준은 연구소 깊은 곳에서 사고 당시의 단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했던 제45 구역의 어두운 복도를 지나며, 그는 마치 자신의 발걸음조차 누군가에게 들킬까 조심스러운 듯 주위를 살폈다.
연구실 내부는 정적에 휩싸여 있었고, 민준은 비밀번호로 잠긴 파일 하나를 발견하고 모니터를 주시했다. 화면에 떠오른 '캡슐 A와 캡슐 B의 연결'이라는 내용은 그를 한순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 두 캡슐이 인간의 의식을 조정하기 위한 시도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의 목에 아직도 그 감각이 남아 있음을 느꼈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울리는 데이터 흐름이 그의 감각을 자극하며, 그를 끝없는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는 화면을 응시하며, 자신이 실험의 일부였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꼈다.
"더 이상 실험체로 남을 수는 없어."
그는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연구소 안에서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과 자신을 감시하는 듯한 기기들의 움직임은 그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조금씩 통제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 채 불안한 결심을 품고 연구소를 빠져나갔다.
서윤 역시 작업실을 떠날 준비를 하며 데이터를 저장하고 금빛으로 빛나는 손을 장갑으로 덮었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이 복수의 도구가 아닌,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패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알지 못한 채,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같은 진실을 마주하고 있었다. 서윤과 민준은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그들의 길은 서서히 교차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