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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레스트 강 May 06. 2024

E11. 나일강

 나일강(Nile River)은 적도 근처에서 발원하여 아프리카 대륙의 동북부를 흘러 지중해로 유입되는 길이 약 6,650km인 강이다. 남미에 있는 아마존(Amazon) 강과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라는 기록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나일’이라는 명칭은 ‘강’이라는 뜻의 고대 셈어 '나할(Nahal)'에서 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히브리어로 '강'을 뜻하는 ‘나할’의 어원이기도 하다. 빅토리아호 근처에서 발원하여 수단의 하르툼(Khartoum)까지 흐르는 강을 백나일(the White Nile)이라고 부르고,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발원하여 하르툼까지 흐르는 강을 청나일(the Blue Nile)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흐르는 물의 색깔로 그렇게 나누어 부르지 않나 생각된다. 하르툼에서 백나일은 청나일과 합류하여 나일강 본류를 이루고 이집트를 거쳐 북쪽에 있는 지중해로 흐른다.     

 나일강의 폭은 이집트의 아스완 댐 근처에서 800m 정도가 되고 물 흐름은 어른들의 보행 속도 정도 되는데, 카이로 근처에 오면 강폭이 1.6km 이상으로 넓어진다. 카이로를 지나면서 나일강은 수많은 수로로 나뉘어 비옥한 삼각주 평야 지대를 이루면서 지중해로 빠져나간다. 다른 강의 불규칙적 홍수와는 달리 나일강은 매년 일정하게 범람하는 홍수로 유명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1년을 365일로 계산하는 태양력을 만들어 연례적인 범람에 대비하였다. 나일강의 범람은 이집트의 번영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이 범람은 에티오피아 고원의 겨울철 강우와 눈 녹은 물 때문이다. 이때 비옥한 미립질의 검은 토양이 하류에 공급된다. 범람의 시작은 하르툼의 경우 4월이며 북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늦어져서 카이로 근방에서는 10월에 최고조에 달한다. 이러한 범람이 끝난 후 농지를 원래대로 복구하기 위해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는 측량학과 기하학이 발달했다고 한다. 최근에 홍수로 인한 수해를 막기 위해 아스완 댐 등이 건설되었다. 1970년에 준공된 아스완 하이 댐은 수단 국경 지역까지 형성된 거대한 인공호수인 나세르호를 만들었다. 댐 건설로 나일강 하류의 유량 변화는 상당히 안정되었으나, 다른 부수적인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다. 이집트에서 나일강은 생명의 젖줄과도 같다. 이집트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지만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는 거대한 나일강으로 인하여 고대문명을 꽃피운 나라이다. 세계의 4대 문명은 강 유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유역, 인도의 갠지스강 유역, 중국의 황하 유역을 고대문명의 4대 발상지라고 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을 신격화시켜 신으로 여겼다. 나일강 물이 불어나는 것은 그 신의 축복이라고 이해하였고, 나일강 물이 줄어드는 것은 신의 불만이라고 생각했다. 나일강의 동편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거주 지역이고 나일강의 서편은 해가 지는 쪽으로 죽은 자의 땅이라고 생각하였다. 성경 창세기 41장 1~3절에서 나일강은 특별한 이름이 없이 단순히 ‘하수(河水)’라고 언급되었다. 


 옛날에 이집트에 홍수가 있으면 이 지역에 풍부한 곡식 생산과 번영을 의미하였다. 반면에 나일강에 홍수가 없으면 흉작과 굶주림을 의미하였다. 인근의 다른 고대 근동지역에 기근이 있을 때마다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물 근원을 가지고 있던 이집트는 좋은 피신처가 되었다. 창세기 12장 10~20절에 보면 가나안에 살던 아브라함은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이집트로 내려갔다가 사촌인 아내 덕에 자신의 목숨을 보존할 수 있었다. 창세기 42장 이후의 기록을 보면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도 가나안 땅에 가뭄이 들어 그 아들들을 이집트로 양식을 얻으러 보냈다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아들 요셉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있음을 보고, 그 후손들을 이집트의 고센 땅으로 이주시키게 되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에 모든 생활을 의존하는 팔레스타인 지역과는 이집트가 엄밀하게 구별된다. 이런 점으로 성경은 신명기 11장 10절에서 이집트를 빠져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은 이집트 땅과 같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나일강 계곡은 아스완 댐 근처에서 삼각주 지역까지 약 960km에 이르는데, 이 계곡의 양편으로 10~16km 정도의 지역이 비옥한 농경 지역이다. 이집트에서 농작물 재배에 적합한 지역은 이런 나일강 계곡과 하구의 삼각주 지역이다. 이러한 농경 지역은 전체 이집트 영토 가운데 약 7%에 불과하고 그 외의 지역은 불모의 사막이다. 나일강은 이집트의 농업 이외에도 상부 이집트와 하부의 삼각주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로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나일강을 통하여 이집트의 신전들과 조각품을 만드는 질 좋은 화강암이 상부 이집트에서 하부로 배나 뗏목으로 옮겨졌으며, 삼각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기타 물건들이 상부 이집트의 중심도시 테베(룩소르)로 옮겨졌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인구가 천만 명이 넘는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카이로가 이집트의 중심지로 부상하기는 역사적으로 후대의 일이다. 고왕국 시대 이집트의 중심지는 지금의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멤피스였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오늘날의 카이로 근처에 종교 중심지였던 헬리오폴리스가 있었다. 헬라 시대에는 지중해 해안에 알렉산드리아가 세워지면서 이집트의 중심지는 그곳으로 옮겨갔다. 그런 상황은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카이로가 이집트의 새로운 정치적 중심지로 부상하기는 아랍 시대에 들어와서 생긴 일이다.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이집트의 중심지는 수 세기 동안 중세도시로 성장했다. 969년 이집트의 통치자가 바뀌면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그곳 이름을 ‘알 카히라(승리자)’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카이로’란 도시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카이로를 그리스문자로 쓰면 ΧΡ(카이로)가 된다. 우리나라 어느 동네에나 있는 천주교 성당 건물을 보면 ΧΡ란 글자가 보인다. 아마도 크리스트(ΧΡΣΤ)라는 의미일 터이다.

     

 이집트 인구의 약 6% 정도가 이집트의 기독교인인 콥틱교인이라고 알려진다. 카이로의 어느 지역에 가면 기독교 유적들이 있다. 아부 사르가(Abu Sarga) 교회는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AD 4세기말에서 5세기 초에 세워졌다고 전해 온다. 이 장소는 아기 예수를 데리고 요셉과 그 가족이 피난하여 수개월을 지냈던 곳으로 전해진다. 아부 사르가 교회가 있는 골목 안쪽 끝에는 건축연대 미상인 벤 에스라 회당이라는 유대인 성당이 있다. 유대인 공동체가 이곳에 존재하였던 사실은 요셉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이곳에 머물러 살았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오늘날 그 지역에는 쓰레기장이 있어서 기독교인들이 사회적으로 박해받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위 사진은 카이로에서 유람선을 타고 나일강 위에서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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