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요한계시록 21장 21절)
'The twelve gates were twelve pearls, each gate made of a single pearl. The great street of the city was of pure gold, like transparent glass.' (Revelation 21 : 21)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태복음 16장 18, 19절)
천국의 길은 무엇으로 어떻게 되어 있을까? 사도 요한이 본 천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正金)으로 되어 있다. 어떤 장로님이 이 세상에서 고생하며 모은 재산을 그대로 놓고 가기가 서러워서 전 재산을 팔아 금괴로 만들어서 품에 안고 죽었다고 한다. 천국에 당도하여 품에 있는 금괴를 보니 황금색은 간 곳이 없고 투명한 유리같이 보이더란다. 천국의 열쇠를 목에 걸고 있던 베드로가 장로님을 보고 환영의 인사를 한다. ‘장로님, 천국에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으셨소. 그런데 장로님, 무엇하러 금덩어리를 가지고 오셨소? 여기 천국에서는 모든 길이 정금(正金) 곧 순금으로 되어 있는데요.’
이 세상에서 도로가 그냥 흙으로 되어 있으면, 비가 오면 길이 쓸려 나가고, 자동차가 다닐 때 흙물이 튕겨 나가서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래서 도시의 도로나 고속도로는 아스팔트 아니면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천국에 자동차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경에 의하면 천성의 길은 투명한 유리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금의 색깔은 노란색인 줄로 알고 있는데 투명하게 보이는 게 쉽게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금반지는 분명 노란색 계통이지만 이를 잘게 부수어 수십 나노미터 크기의 분말로 만들어 용액에 띄우면 금 분말의 크기에 따라 적색에서 주황, 노랑, 녹색에 이르는 다양한 색으로 보인다.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Great British Museum)에 가면 AD 4세기 로마 시대 유리 세공품으로 리카거스 컵(Lycurgus Cup)이 전시되어 있다. 컵 밖에서 반사된 빛은 녹색으로 보이고, 컵 안으로부터 투과된 빛은 적색으로 보인다. 컵 안에 램프를 설치하고 켜졌다 꺼졌다 하게 하면, 컵 바깥에 있는 관람자의 눈에는 컵 유리 부분의 색이 적색과 녹색으로 교대로 나온다. 현대 기술의 분석 결과는 이렇다. 나노미터 크기의 작은 금덩어리(gold cluster)들이 유리 속에 골고루 분산되어 있게 유리컵을 만들면 빛의 경로에 따라 다른 색이 난다. 이런 빛과 색에 관한 이야기는 필자의 저서 중에서 생활과학 에세이 시리즈 제1권인 ‘드림 스펙트럼’에서 다루고 있다.
현대 과학은 중세 시대의 종교적 억압이나 편견에 반발하여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를 거치며 갈릴레오(Galileo Galilei, 1564~1642)로 대표되는 지동설을 근간으로 기존의 가치체계가 바뀌고, 그리스와 로마의 정신을 계승하고, 인본주의와 지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실증주의를 입각하여 새로운 과학 지식을 확립하였다. 이 지식은 현재 학교 교육의 근간이 되고 있다. 최근 50여 년 동안 우리의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다. 우리 지식의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지고, 그 양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아마 창세기 11장 1~9절에 나오는 바벨탑이 현대에 재현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학적인 지식으로 성장한 필자와 같은 전문가, 프로페셔널(professional),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들은 합리성으로 훈련되어 나름대로 자부심이나 독립심이 강하고, 독특한 고집이 있을 수 있다. 현대의 과학자나 전문직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 여러 기적과 기사들, 부활과 승천에 대한 회의가 있을 수 있다. 요한복음 20장 24~29절에 나오는 예수의 부활에 대한 도마의 의심과 그에 대한 예수의 대답이 대표적이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이 말에 대한 예수의 답은 간단하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Because you have seen me, you have believed; blessed are those who have not seen and yet have believed.)’ 전에는 비과학적이라고 생각되던 현상들이 이제는 새롭게 이해되고 설명된다. 현재 지식의 한계성을 인식하면, 앞으로 더 많은 비밀이 풀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