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곰! 표류기-필리핀 보홀-1일 차 오후일정 2

필리핀에서 표류하는 북곰(음식 맛있다)

by 북곰

가볍게 샤워와 환복을 한 후 저녁 식사를 위해 리조트 밖으로 나갔다. 1일 차 저녁은 필리핀 보홀에서 유명한 '라모이' 식당이었다. 블랙페퍼 크랩, 쉬림프, 갈릭 라이스, 오징어 등이 유명한 곳이다. 내가 유튜브로 봤던 곳이었고, 푸른빛을 띤 크랩이 너무 먹고 싶었다. 리조트직원에게 교통수단을 부탁하니 맞은편 앞에 정차했던 '툭툭이(필리핀 교통수단, 오토바이에 사이드카가 결합된 형태이며 2~3명이 이용하기 좋다. 단거리 및 좁은 길 이동 등에 용이하다.)를 불러줬다. 나는 필리핀 오기 전 '툭툭이 흥정'을 검색했기에 운전자가 이야기하면 무조건 요금 협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라모미 오케이?"

"100페소, 다운 노!"

"어.... 엉.... 오케이..."

흥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다.... 100페소를 주고 라모이 식당에 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꼬불꼬불한 길을 잘도 요리조리 움직여 갔다. 한국처럼 포장이 된 도로가 아니라 군데군데 움푹 파진 곳이 있었고, 뜬금없이 쏟아지는 비로 물이 고여있었다. 툭툭! 한 번씩 머리가 천장에 닿았다. 불편함이 조금씩 커져가고 있을 때쯤 드디어 광장에 도착했다. 툭툭이에서 내리고, "바이바이~해브 어 나이스데이!" 한 후 아내와 인파에 묻혀버렸다. 필리핀 보홀은 정말~ 사람이 많기도 많다. 웃긴 건 대부분이 한국사람이다. 모습도 옷차림도 누가 봐도 '나 한국인이다.' 간간히 필리핀어로 쓰인 네온사인이 아니면 여기를 누가 필리핀이라고 할 것인가... 예전 내가 살던 복잡다잡한 시골 마을을 보는 기분이었다. 과거, 현대를 오고 가는 느낌이 좋다.

"통순 이리로 오게~"

"와 저 오빠 멋있게 생겼네."

"자네! 아들뻘인 친구에게 그 무슨 망발인가.... 한심한 뚱땡이군"

내 친구 통순이지만 어떤 때 보면 이 친구 망발이 무섭다. 길도 모르는데 통순을 데리고 가다 보니 큰 간판이 보였다. 라모이었다. 기쁜 마음도 잠시.... 웨이팅이 길었다. 줄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이 한국인이었다.

'역시.... 한국인들은 어디 가나 있구만....'

웨이팅을 관리하는 직원이 있어, 통순이름을 명단으로 올리고, 수조에 있는 새우와 크랩을 봤다. 주문을 받는 직원이 와서 이야기하길래 통순이 "블랙페퍼 쉬림프, 갈릭 라이스, 그릴드 스퀴드"라고 했다. 내가 바로 옆에서 "라이스 투컵, 투컵"하고 주문을 도와줬다.

"쉬림프?! 오케이, 초이스 디스(이것 선택)?! 디스(이것)?! 디스(이것)?!"

직원이 새우를 보여주기 시작했고, 오케이를 연발했다. 10마리가 됐을 때 내가 "스탑(멈춰!), 스탑(멈춰!!)! 이나프!!(돈 없어!!)"외쳤다. 직원이 잘 알아듣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통순 우리 주문 잘한 것 맞지?"

"응 잘한 것 같아요"

크랩을 주문하고자 했는데, 통순이 '크랩은 먹을게 많이 없을 것 같다.'라고 해, 새우를 주문했다. 기다리는 와중에 "와와~~!" 하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라모이 바로 옆에서 '불꽃 쇼'를 하는 것이었다. 원래 계획은 식당에 앉아서 불꽃쇼를 감상하는 것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서서 보게 되었다. 인파가 많아서 잘 보이지도 않고, 딱히 흥미가 없어 불꽃쇼는 안 봤다. 이윽고 우리 차례가 되어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물티슈로 꼼꼼하게 손을 닦고 기다리니 주문한 '블랙페퍼 쉬림프, 갈릭 라이스 2 공기, 구운 오징어'가 나왔다. 나와 통순은 아무 말 없이 흡입하듯이 먹었다. 비닐장갑을 끼고 새우를 먹었는데....'와 블랙페퍼 소스가 나랑 맞구나' 우리가 고른 통통한 새우에 블랙페퍼 소스는 환상의 궁합이었다. 블랙페퍼 소스는 흑후추인데, 알싸한 맛에 짭짤하면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방심했을 때, 톡! 하고 쏘는 맛이 일품이었다. 처음 맛본 소스와 잘 구워진 새우가 환상의 커플이었다. 나와 통순이 고른 새우라 통통하기가 이를 데 없었는데, 알싸하고 짭짤하면서 감칠맛이 좋은 소스, 통통 새우의 단맛이 함께 궁합을 이루니 '천상의 맛'이라 할 만했다. 나와 통순은 다른 메뉴보다도 허겁지겁 블랙페퍼소스 새우를 먹었다. 내가 5개를 먹은 시점에서 통순은 큰 결단을 했다.

"오빠앙 잘 먹으니까 보기 좋네요. 여기 1마리 오빠 먹어요!"

"응? 난 벌써 5마리 다 먹었는데.... 자네 괜찮겠나...."

"먹어요. 맘 바뀌기 전에~"

눈을 질끈 감은 통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새우 머리를 떼고, 꼬리를 떼고, 새우 등부터 시작해 잘게 잘게 껍질을 벗겼다. 잘 벗긴 새우에 블랙페퍼 소스를 고루 잘 묻혀 한입에 먹었다. '참 맛있는 새우다!' 블랙페퍼 소스 새우를 다 먹고도 갈릭 라이스에 소스를 비벼 먹었다. 같이 주문한 오징어 구이는 크게 와닿는 맛은 아니었지만 블랙페퍼 소스 맛에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기분 좋게 저녁을 먹은 우리는 숙소로 바로 돌아가기 아쉬워 근처를 돌아보기로 했다. 사람이 많아 혼잡했고, 도로 곳곳에 패인 곳이 있어 걷기도 힘들고, 쉴 새 없이 돌아다니는 톡톡이와 오토바이로 일견 위험해 보이기도 한 길이었다. '이국'이라는 마법 때문인 듯 모든 게 신기하고 마냥 좋았다. 어렸을 때 내 고향을 보는 것 같은 향수마저 있어 살짝 눈물이 아른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조용히 걷던 우리 둘이었다.

"통순! 자네 다리 아프지.... 우리 이제 걸어갈까?"

"아니, 우리 첫날밤인데 이렇게 보내는 건 아쉬워요. 흠 마사지라도 받으러 가야겠어요."

"엉? 뭔 마사지인가.... 그것 내일 일정에 호핑투어 하고 마사지받을 거잖아. 그냥 내일 받자"

"나 지금 기분좋아용. 그냥 조용히 내가 하자는 데로 해용!"

갑자기 기합 든 통순 때문에 그저 말없이 투덜거리며 통순이 하는 행위를 보고 있었다. 통순은 카톡으로 채팅하는 것처럼 보였고, 10여분 후 전화를 한 후 나를 보며 의기양양하게 얘기했다.

"여기에서 기다리면 마사지샵에서 차량을 보내줄 거예요."

"헐 언제 예약을 한 거야.... 자네 대단하구만"

"껄껄껄 오빠는 나만 믿으면 돼용"

그렇게 기다리니, 정말로 차량이 왔고, 나와 통순은 2층 허름한 건물의 마사지샵으로 갈 수 있었다. 아, 필리핀은 큰 건물이 없다. 1층 규모의 집들이 많이 복잡하게 붙어있는 경우가 태반이고, 한국처럼 30~50층 건물은 많지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했지만 내부는 넓고, 그리고 세족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예약을 했다고 하니 젊은 여성 2명이 와서, 나와 아내의 발을 세족 해줬다. 내 발을 누군가가 씻겨주니 기분이 묘하고, 간질간질하고, 무엇보다 시원했다. 마사지라는 게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하는 지점을 눌러주고, 시원하게 풀어주는 거니 더 그런 것 같았다. '통순이 진짜로 감사하고 고마운 생각이 들 때 한 번쯤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다 말았다. '이국'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자칫 한결같은 북곰마저 바꿀 뻔했다. '휴 다행이다.' 세족을 해주고 가볍게 마사지해주던 여성이 수건으로 발을 닦아준 후 '2층으로 올라가라' 했다. 여러 직원의 안내를 받고 2층으로 올라가 환복을 했다. 중년의 힘세보이는 여성 마사지사 2분이 들어왔다. 구멍이 뚫린 간이침대에 '얼굴을 집어넣고 누워라'했다. 나는 마사지가 초면이라 별 기대 없이 누웠는데,

'와~와~', "오~오오!"

'필리핀 오면 마사지 2번 받아라.' 정말 좋았다. 노쇠한 북곰은 밤에 무릎, 허리, 어깨가 매번 아팠고 계속된 통증으로 아픔마저 가물가물했는데 그게 고쳐졌다. 옛날 10대 때 북곰이 된 기분이었다.

"통순 나 허리도 어깨도 온몸이 안 아프네."

"그래용. 오빠가 마사지를 한 번도 안 받아서 효과가 좋았나 봐요"

통증 없어진 몸에 저 하늘까지 날아갈 기분이었다. 통증 없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았다. 중년 마사지사에게 팁을 주며 연신 "땡큐! 땡큐!"를 외쳤다.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온몸에 뼈가 제자리를 찾아 맞춰진 기분이었다. 잠깐의 피로도 통증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기쁨을 얻으니 하루가 너무나 행복했다. 마사지샵에서 숙소까지 차로 태워줬다. 필리핀 보홀 1일 차는 내 생에 잊기 힘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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