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표류하는 북곰(응! 수영은 좋다)
오전 내내 알로나비치를 걷고 편의점에서 산 코카콜라 2리터와 맥주, 필리핀 치토스(정확한 명칭을 몰라 가장 가까운 과자로 정함)를 들고 헤난프리미어코스트 리조트로 돌아왔다. 노쇠한 북곰과 꿀돼지 와이프는 숙소로 돌아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깐 기절했다, 깼다. 맥주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인데 희한하게 필리핀 맥주 산미구엘은 나에게 맛있었다. 특히 산미구엘 애플은 달콤한 사과 음료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혼자 기분 좋게 1병을 마시고 싶었는데 아내 통순이 절반을 뺏어 마셨다.
"오빠앙 이것 달고 맛있네요...."
"어.... 그래.... 자넨.... 통순이니.... 다 처먹게...."
참, 불만은 많았지만 같이 함께한 전우라 쉽게 양보를 해줬다. 물론, 한국에 도착 후 산미구엘 맥주 애플이 우리 동네 편의점에 없다는 걸 알고, '아우~이런.... 제길'했지만 말이다.
잠깐 휴식 후 나와 통순은 수영복을 입었다. 내일 호핑투어에서 입을 수영복은 캐리어에 고이 간직해 두고, 그냥 아저씨 전용 폼이 넓은 꽃무늬 반바지와 상의는 래쉬가드를 입었다. 환복이 빠른 나와 다르게 아내 통순은 빨간색 상의와 반바지를 입었던 것 같다. 우리는 리조트 내부 1층에 있는 수영장이 아닌 옥상에 있는 인피니트 풀로 갔다. 옥상으로 올라가 인피니트 풀을 본 순간 '와 정말 리조트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알로나비치가 그림처럼 보였고, 하늘에 떠있는 새들이 지근거리에서 날고, 옥상에 정원, 풀장 가운데 바가 있고 의자가 물속에 담겨있었다. '흠! 북곰 출세했구나.... 이런데도 와보고....' 썬배드가 있었는데 다 자리 주인이 있었고, 자리가 없는 썬배드가 물가에 있었는데 물속에 둥둥 떠다니는듯한 착각을 주웠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타월과 아쿠아 슈즈를 두었다. 아쿠아 슈즈를 신고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필리핀 직원이 "쏴쏴쏴" 했는데 눈치를 보니 아쿠아 슈즈라도 수영장에서 신으면 안 되는 것 같았다. "오케이, 오케~!" 영어를 남발하면서 쉽게 슈즈를 벗었다. '캬~하루 만에 늘어난 영어실력! 해외파 유학곰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군....' 자랑스럼을 잠시 뒤로 한채.... 진정으로 자랑할 순간이 왔다.
"통순! 자 봐라 오빠가 둥둥 떠다니는 것 보여줄게"
수영을 못해 겁내고 있는 통순에게 자유로운 영혼 마냥 떠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즉시 배영을 했다. 상의가 말려 올라가 하얏디 하얀 뚱뚱한 앞배를 공개했지만 그래도 '이 둥둥 떠다니는 나의 모습에 통순은 얼마나 부러워할까'
"어푸풋, 우억엌!"
몸과 머리가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놀란 입에 수영장 물을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두 발로 수영장 바닥을 짚고 일어서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깔깔깔"
얄미운 통순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그런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뭐야, 뭐야.... 바닷가 날랜 북곰이 물에 못 뜬다고....'
놀랍다. 바닷가 물속에 들어가면 몇 시간이고 튜브 없이 물에 둥둥 떠다니며 세월아 네월아 했던 북곰이다. 땅에 자신감 없던 북곰이라도 물속에서만큼은 자신감 충만 북곰인데....'이게 대체 뭐지....' 그렇게 한참을 자유형, 배형, 개헤엄, 개구리 수영.... 아는 모든 수영동작을 했다. 마신 물이 1.5리터를 넘겼을 때쯤,
'못해먹겠네.... 바닷가는 소금물이라 몸이 떠다닌 건가....' 수영에 흥미를 잃고 썬배드로 올라갔다.
"통순 나 수영 재미없어서 못하겠네...."
"나 이제부터 수영하려고 튜브 샀어"
"허허, 애기들이 사용하는 튜브를 왜 샀어? 돈 많은 뚱땡이구만"
"자네 빌려줄 테니까.... 조용히 해"
"통순 나는 절대로 튜브를 사용하지 않네.... 확~응? 이 작은 튜브는 뭔가? 왜 4개나 있는 거야?"
"그것 팔에 끼고 수영하는 튜브야.... 큰 튜브 사니까 서비스로 주더라고.... 아 맞다 오빠 그것 끼고 수영해 봐"
"응? 됐어.... 내가 무슨 튜브야.... 흠, 한번 해볼까"
수영장 가운데 바에 있는 직원에게 가서 영어는 못하고, "푸슉 푸슉~디스디스 푸슉 푸슉! 에어, 에어! 에어!" 하니, 직원이 "오오! 오케오케이"하며 팔에 끼는 작은 튜브에 바람을 집어넣어 줬다.
"에휴 이런 게 무슨 효과가 있다고..."팔에 튜브를 끼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아무런 기대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배를 하늘을 향해 물속에 뉘었는데.... 헉! 몸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었다.
"오오오.... 통순! 나 드디어 떴네...."
"그러니까.... 튜브 사용하라니까...."
물에 둥둥 떠다니게 되어서야 드디어 이유를 알았다. 내가 바닷가에서 그렇게 한참을 둥둥 떠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구명조끼였던 것이다. 항상 구명조끼는 무조건 착용했는데 여기 필리핀 수영장에서 구명조끼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 그렇쿠나 구명조끼를 입어서 내가 둥둥 떠다닐 수 있었던 거였구나... 크~"
어려운 난제를 풀면 그다음은 즐기면 된다. 다시금 자유를 찾은 뚱뚱한 북곰은 물이 침대인 것처럼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세상과의 단절' 귀에 물이 들어가면 몸에 힘이 빠지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세상인 듯 세상이 아니고, 내가, 내가 아닌듯한 이 느낌이 너무 좋다. 통순이 뭐라 해도 그저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계속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반개의 반개의 눈이 감겼다, 떠졌다 하는데 더 긴 시간이 걸린다. 튜브에 꽉 찬 통순이 왔다, 갔다 해도 아무런 신경이 안 써진다. 더 깊은 경지로 나아갈 때쯤 내 몸을 통순이 잡아당겼다.
"뭐 하는 짓인가! 지금 방금 세상의 진리를 알았는데?"
"배고파.... 우리 아침 조식만 먹고 아무것도 안 먹었어"
"참말로 뚱돼지구만.... 아이고 진리가 코앞이었는데.... 흠 그렇게 이야기하니 배가 고프긴 하구만.... 어디서 먹지?"
"여기 바에서 음식 팔아.... 우리 그것 먹어"
"알았다. 자네가 주문하게",
'나보고 맛집 검색하라 해놓고는.... 옷 갈아입는 것 귀찮으니까. 그냥 여기서 먹어야겠군'
바에 앉아있으니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나는 통순이 어떻게 영어로 주문하나 호기심으로 봤는데.... 메뉴판을 가리키면서
"디스, 디스.... 에스, 에스!" 꼴랑 이게 다였다. 뭐....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라.... 그래 주문만 했음 됐지....
주문이 끝난 후 우리 식탁에는 큰 피자 한판과 샐러드 그리고 산미구엘 맥주와 음료가 있었다. 허기가 반찬이라 피자와 샐러드가 너무 맛있었다. 그렇게 특별할 것은 없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피자였는데,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
"오빠 화덕이라 맛이 다르네요.... 쩝쩝"
"쩝쩝~ 으응! 참말로 맛있구먼.... 거기 자네 조금만 천천히 먹게"
"오빠야 말로 천천히.... 쩝쩝! 먹어요..."
다투면서 맛있게 피자를 다 먹고 여유 있게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아내가 화장실을 간 순간 우리와 같이 수영을 하던 사람들을 봤다. 가족이 와서 신나게 수영하는 무리가 있었고, 젊은 커플이 수영을 하고 있었고, 사이좋은 모녀가 수영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물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는데 자꾸 내 쪽으로 다가와 물이 넘쳐 내 자리를 적시곤 했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에 어떤 구김 없이 흐뭇하게 봐라 볼 뿐이었다. 시력이 들어간 선글라스라 내가 지켜보는지는 모를 수도 있다. 아름다운 몸매의 여성도 보고 있었는데,
"참 시원하게 일을 봤네.... 껄껄껄"
호탕한 웃음과 함께 통순이 내 시야를 자신의 몸으로 막았다. 늦은 점심이지만 맛있게 잘 먹고 나와 통순은 수영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통순이 수영에 자신감을 보이기 시작했고, 나에게 이것저것 물에 떠다니는 요령을 터득한 뒤, 물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계속 떠다녔다. 썬배드에서 그런 통순을 바라보며....'내가 사람들 눈에는 저렇게 보였겠구나....' 그냥 반성이 되었다. 신나게 물속을 '뚱뚱'하게 떠다니는 통순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저녁을 먹기 위해 우리는 숙소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