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한 밥밥 Oct 21. 2024

불면 특: 게으름? 반박하는 내 말이 맞음

잠을 사랑한 역사는 꽤 오래됐다. 제어되지 않는 어둠에서 평화를 얻었다. 어린이가 꿈나라로 떠나면, 불행이 가득한 집과 어른들이 고래고래 서로를 탓하는 소리 그리고 너덜 너덜한 옷깃도 잊혔다. 꿈은 잘 꾸지 않았다. 의식의 차단이 나를 회복시켰다. 죽음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어린이는 종종 아침, 현실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안타깝게도 어김없이 날은 밝아졌고, 아무도 관심 없는 텅텅 빈 스킨로션과 이른 시간의 차가운 바람은 얼굴을 건조함을 넘어서 따가움을 느끼게 했다.


그 행복한 시간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잠에 들기 힘든 건, ADHD의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그냥 잠에 든 적은 없었다. 딱딱한 바닥 위 깔린 이불 위에서, 매일밤 잠에 들기 위한 대가를 치렀다. 왜 태어났으며, 어떻게 해야 이 거지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생각했다. 베개에는 여지없이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마냥 비관적이진 않았어서, 열심히 살아내 보자는 다짐으로 평화의 세계로 향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직접 목숨을 끊은 자를 지옥으로 보낸다는 말 역시, 억지로 긍정적인 어린이가 되게 했을지도 모른다. 죽어서도 지옥에 있기는 싫었다.


순진한 어린이 시절이 끝나면서, 왜 자기 전에 꼭 머릿속이 이리 복잡해지는지 짜증이 났다. 꼬맹이였던 내가 답지 않게 존재를 논했다는 것이 내가 철학 영재라는 증거가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기엔 대학교 교양 과목에서 니체 양반의 말을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철학은 단순하고 팔랑팔랑 거리는 귀를 가진 나에게는 버겁다. 지옥 갈래, 안갈래의 물음이 나의 구미를 더 당긴다. 근데, 하나님? 헬조선에 오기 전에는 안 물어보지 않았나요?


현실의 문제들이 괴로워지는 삶의 무게만큼 내 머릿속을 헤집어놨다. 취업, 아르바이트, 중독자 부양, 타인 비교, 죄책감, 우울 속에 답이 없는 미래에서 도저히 희망으로 귀결시킬 수 없었다. 불면의 문제를 토로하면, 게을러서 안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얼굴을 마주한 사람은 운동 좀 하라고 웃으며 잔소리를 했고, 키보드를 치는 사람은 ‘불면증 특, 하루종일 누워있음’, ‘이런 애들 데려오면 하루 만에 불면 싹 고침’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의뢰할 돈은 없었기에 혼자 고쳐보기로 했다. 나의 ADHD는 관심이 적어지는 일을 앞두고, 나를 땅바닥으로 붙여놨다. 그럼에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돈을 벌었기 때문에, 집에 있는 날은 거의 없었다. 주말을 맞이하고도, 게으를 수 없었다. 취업 준비를 했고, 시험을 봤다. 뇌는 틈만 나면 나를 눕혔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게으르다는 죄책감에 몸부림쳤다. ADHD 증상임을 아는 지금도 여전히 괴로운 부분이다.


매일같이 운동을 해도, 내가 너무 강철 체력이라 잠에 쉽게 들지 않나 싶었다. 애플워치로 친구들과 활동량 겨루기를 할 때마다, 진적이 거의 없다. 철인 3종 경기 준비를 의심받고, 아무도 내 겨루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강에서 걷고, 실내 자전거도 타고, 헬스장도 다녔다. 월 5만 원에 요가를 배우기도 했는데, 합리적인 가격에 평화를 얻어 기분이 좋았다.(요즘은 너무 비싸다.) 운동은 나를 건강하게 했지만 잠에 들기까지 보다는 잠에 빠진 나에게 더 도움 줬다. 수면의 질이 좋아진 것이었지, 수면의 시작을 맞이하기에는 다른 도움이 더 컸다.


답이 없는 문제를 오랜 시간 생각하면, 답을 얻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시간만 늘어날 뿐이었다. 뇌과학 책을 이곳저곳 살핀 결과, 답은 생각 멈추기였다. 유튜브의 무료 오디오북, 다큐멘터리, 최근엔 침착맨 삼국지까지 틀어놓고 잤다. 남이 하는 말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잠에 들었다. 나의 불면은 타인의 목소리로 표면적으로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도 종종 생각이 멈추지 않는 날에는 3시간 내내 내적 친밀감 가득한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러면 지쳐 잠에 들긴 했다.


얼마나 움직여야 게으른 사람이 아닐 수 있을까? 잠이 오지 않음은 분명 내가 어느 부분에서 덜 열심히 사는 거라고 꾸짖는 듯했다. ADHD 약 콘서타는 나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나는 이제 말소리를 들으며 잠들지 않는다. 그냥 잘 수 있음이 너무나 편리하다. 잠은 그냥 생물학적으로 필수적인 것뿐이다. 게으르지 않아도 잠에 들지 못할 수 있다. 난 여태 게으르다는 말에서 벗어나기 위해 칼로리를 태웠고, 여전히 땀을 흘린다. 종종 불면을 토로하는 친구에게 나 역시 오늘은 움직여 보자는 헛소리를 건넸다. 항상 겸손했어야 하는데, 아는 척 오지랖은 항상 부끄럽게 한다. 잠에 들지 못하는 모든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 ADHD의 진단은 전문가를 통해 받으시길 바랍니다. 약물 효과 역시 개개인마다 편차가 있으니, 전문가의 처방에 따르시길 바랍니다.

이전 06화 럭키비키 아니, 럭키ADHD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