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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쵸로롱 Oct 15. 2024

럭키비키 아니, 럭키ADHD걸!

약의 효과는 굉장히 뛰어났다! 그리고 난 지금 이제껏 주의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억울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지금 오후 1시를 겨우 넘겼다. 끼니도 두 번이나 챙기고, 칼로리도 태우고, 말끔하게 샤워 후 향수도 뿌렸다.(놀랍게도 이 사이에 소파에 누워서 시간 흘려보내기도 완료했다.) 평소의 나라면 지금 오후 5시임을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을 것이기에 놀라운 변화라 할 수 있다. 갓생을 꿈꾸며 번번이 실패한 나날들은 과거의 나를 좌절시켰다. 나도 이제 매일 나의 성장을 꿈꾸며, 자기계발하는 멋진 여성의 삶에 대한 희망을 가져본다.


ADHD약이 기적의 집중력, 공부 잘하게 해주는 약은 아니다. 머릿속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들을 바로 실행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뿐이다. 조금 콘서타랑 친해졌다고, 나름의 생산물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ADHD는 종종 상대방이 느끼는 것보다 친밀감을 더 빠르게 느껴서 대인관계에서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는데, 난 약도 벌써 베프 같다. ADHD가 아닌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나만 친하다고 느껴지는 질 때마다 내 말랑콩떡한 마음은 뭉크의 절규 표정을 지으며 뭉개져버린다. 왜 나랑 안 친해..?


야무지고, 착한 나랑 안 친하면 걔만 손해다. 그렇다! 이 글은 손해에 대한 얘기다. (ADHD 생각 흐름과 같은 괴랄한 글 하나 정도는 표현해보고 싶었다. 정신없음을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DHD임을 늦게 안 나는 손해 봤을까? 단순하게는 정규 교육이 시작되는 8세를 기준으로 22년, 과장해서 내 평생 30년의 주의력을 손해 본 기분이다. 다행히 영어유치원 다닐만한 형편에서 자라지 않아서 몇 년 덜 손해 봤다. ADHD는 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다. 나는 미디어 속의 ADHD 키즈들처럼 온몸으로 과잉행동을 보여주는 까불이는 아니었고, 혼자 멍하니 뇌로 우주탐방을 했던 주의력 결핍에 시달렸던 안경 선배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내가 ADHD임을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우주 말고 서울대에 갈 수 있었을까?


내가 난 경기도 외곽의 이름이 모두 같은 초중고를 다녔다. 예를 들어 명랑면이었다면 명랑초중고였을 것이다. 이사를 가지 않으면 다른 학교 선택하기가 어려웠기에, 거의 같은 동창들을 12년 내내 보기도 했다. 나의 모교 선생님들께선 수능 점수도 안 나오는 이 촌스러운 시골 애들을 대학을 보내기 위하여 농어촌 전형을 위주로 입시 전략을 세워주셨다. 하지만 난 안타깝게도, 농어촌 전형이나 가난한 애들의 상징이라는 기회균등 전형도 해당되지 않았다. 아빠의 가정사 비공개하기 전략의 일환으로서 바로 옆에 시골로 인정되지 않는 동네에 친구들보다 허름한 집에 살았고, 걔네들처럼 학원도 못 다녔는데 말이다. 아빠가 기숙사 보낼 돈도 없었으면서 말도 안 되게 중고차를 2대나 갖고 있었던 게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서 내 선택지는 일반 전형이었는데, 나를 대학 보낸 우리 담임 선생님께 내 인생 내내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사례도 몇 없고, 그 마저도 실패한 업무를 담당하는 자의 서러움을 회사를 다녀보고서 알았다.


이것저것 안 되는 게 많았지만, 특히 가정환경은 더 별로였다. 아빠는 대학 대신 실업계 가서 빨리 취업하길 권유했다.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중졸 노가다 아저씨가 사랑하지만 딸내미의 대학 보내기는 버거웠을 것이다. (아무도 예상 못했지만, 돈 많은 사립대는 없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이 후했다. 다행히 서울로 독립한 이후 아빠에게 받는 돈은 거의 없었다.) 같이 살던 아줌마는 아빠가 자기 아들이 하고 싶다던 축구를 시켜주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로 나 역시 대학 문턱도 못 밟게 하겠다는 저주를 퍼부었다. 이 끔찍한 말은 질풍노도의 나를 꿈틀거리게 했다. 안 그래도 나쁜 놈들 다 일러바치는 기자가 되고 싶었는데, 나는 더 격렬하게 생존했다.


ADHD는 원시 시대 살아남기 장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본능적으로 빠르게 위험을 감지하며, 자신이 흥미를 느낄 경우 다 잊고 몰입해 버리는 과집중의 특성은 나를 입시에 미친 자로 만들었다. 그 시절에 나는 내신 점수와 생활기록부 한 줄을 위해 온 시간을 투자했다. 개인 공부는 물론에 학생회, 토론 동아리, 방송부, 대외활동까지 쉬는 날이 없었다. 지금 떠올려보니, 나는 나 자신에게 헬리콥터맘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1 지망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몇 년 전까지도 모교에서 전설의 일반전형 장학생 사례라고 불렸다.


개천이 흐르고 가을이면 벼가 익는 시골 학교에서 용이 나는 데 성공했다고 자부한다. 학벌주의를 논하기보다는 학생으로서 내 목표를 이뤘음을 말하고 싶다. 만약 나에게 ADHD가 없었다면, 공부를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마 ADHD임을 알았더라면, 그녀는 더 힘들어했을 것이다. ADHD 과집중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치를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지, 갑자기 아인슈타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환경과 ADHD는 나를 울릴 때가 많지만 나를 잘 생존시켰다. 서울대 출신은 아니지만, 난 우주최강 럭키ADHD걸이다. 내가 ADHD여서 다행이다.


P.S. 중학교 때 수학 선생님께서 진행한 학업 시간관리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절친한 친구를 따라 지원했는데, 처음으로 공부를 하면서 칭찬을 받았다. 선생님들의 칭찬이 너무 좋아서 계속 공부했다. 당시 학년 등수 별로 반을 나눠서 수업을 듣는 상황이 있었는데, C반에서 A반으로 갔다. ADHD였던 나에게 칭찬은 나에게 정말 큰 동기부여가 됐다. 즉각적인 보상의 긍정적 강화가 제대로 작용한 ADHD 사례로 내 멋대로 분류해 본다. 지난 모든 일을 ADHD 관점에서 생각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덧붙인다.


* ADHD의 진단은 전문가를 통해 받으시길 바랍니다. 약물 효과 역시 개개인마다 편차가 있으니, 전문가의 처방에 따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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