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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밥밥 Oct 14. 2024

매일 아침, ADHD 뇌랑 싸우는 중이야요

나는 열심히 잔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을 믿는다. 누구나에게 필요한 이 수면은 나에겐 비싼 값을 치르게 한다. 근데 나의 경우에는 잠에 드는 것도 어렵지만 아침에 일어나기는 더 힘들다. 나의 뇌와 신체는 자주 충돌한다. 아직 졸리다며 눈을 다시 감아버리고, 다시 잠에 빠진다. 나의 애플워치는 10분마다 손목에서 알람을 한없이 울린다. 그러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자고 있는 상태로 뇌만 깨어난다. 가위에 눌리는 것인데, 이러면 너무 피곤해서 다시 잠에 빠진다. 1-3시간 정도 그렇게 일어나야 하는 뇌와 자고 싶은 몸과 싸움을 하다가 겨우 침대를 벗어난다. 다행히 난 가위에 눌려도 귀신같은 건 안 나온다. 오히려 현실감 있게 가족이 나왔거나 동거인이 나왔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서 양치질을 하고, 차디찬 바닥으로 기어가봤지만 소용없다. 다시 잠에 빠지고 일어나야지만, 낮에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살아간다. 제대로 된 컨디션이 아니면 한없이 예민해진다. 그래서 더 잠에 집착했다.


애플워치를 내 인생 잘산템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 똑똑한 애플워치는 돈을 주면, 유료 앱으로 깊은 수면, 얕은 수면, 렘수면, 심박수를 측정한다. 깊은 수면이 부족하지도 않고 전체적인 수면시간도 7-8시간으로 충분하다. 새나라의 성인을 표방하며 12시 전에 침대에 눕는데도,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보통 인간들과 다르게 나는 9 ~ 10시간을 자야 하는 인간일까 봐, 더 잘 수 있도록 알람을 맞춰봤지만 소용없었다. 알람 울리기 전부터 가위에 눌려있었기 때문에 더 심한 피곤함을 불러왔다. 손목에 착용하고 있는 문명이 가위로부터 날 구해주는 혜택마저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몇 시간을 자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영양 부족이 원인이 아닐까 영양제의 세계에도 입문했다. 유산균, 비타민 B, C, D, 종합비타민, 오메가 3, 마그네슘 등 함량을 따지며 온갖 약사 유튜브 채널을 정복했다. 영양제도 많이 먹으면 배가 부르다. 빈속의 영양제는 트림 냄새도 역하다. 그래도 손톱이 덜 깨지고, 안색이 좋아진, 그냥 낮에 활기찬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운동도 열심히 했으며, 탄단지 영양 성분도 고루 따졌다. 난 그냥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고 싶을 뿐인데, 점점 건강에 유별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의학적 지식도 없는 내가 돌팔이가 되어가는 것 같아 영양제도 2-3가지로 줄이고 그냥 적당히 살기로 했다. 아직 과학이 하품하는 이유도 못 밝혀냈다니까 좀 참았다.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나눴다. 상담 선생님은 평균 수면 시간을 넘지도 않고, 깨지도 않으니 문제가 아닐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다. 세상에는 불면으로 고통받고, 과수면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있으니, 그런 사람들만큼의 고통이 아니라면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들렸다. (그렇게 말씀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기엔 당시 가족 스트레스와 공허함의 문제가 컸다. 해당 상담 역시 기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전문가의 의견을 믿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도 스마트 워치가 보증하는 좋은 수면을 얻는 자이니, 잘 잔사람으로 선언했다. 중간에 깨지도 않고 쭉 오전까지 통잠을 자는 훌륭한 사람인 것이다. (아침에 못 일어나도) 잘 자는 사람! 많이 자고 건강에 신경 쓰니 피부는 좋아졌겠지. 단점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긍정의 힘! 기합으로 이겨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뇌와 몸이 벌이는 전쟁에서 나만 등이 터졌다. 매일 겪는 미세한 스트레스를 무시하며 살았다.  


결국 둘 사이의 의견 충돌의 원인은 ADHD였다. 드디어 과학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침을 맞으며 각성 상태가 되어야 할 뇌가 도파민 부족으로 정신을 못 차린 것이 원인이었다. 도파민이 넘쳐흐르는 시대에 도파민 마저 빈익빈 부익부인가. 이로서 나는 내가 덜 게으르다는 증거의 문장을 더 획득했다. 약을 먹은 이후로 내 삶의 불편함이 개선되고 있는데, 기상의 문제 역시 완화되고 있다. ADHD의 꼭두각시로 살아왔다니, 허탈함이 컸다. 약을 평생 먹어야 하는 건지, 두렵지만 그래도 내 불편함도 문제였음을 알게 되었다. ADHD 증상은 가뭄에 콩 나는 것처럼 전문가도, 나도 인지하기 힘들다. 성인 ADHD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규정화되지 않으면 문제화되기도 불가할 수 있다. 평균은 신박한 발견이지만, 목소리를 묻어버릴 만큼 폭력적이다. 이렇게 ADHD의 증상은 파이팅으로 이기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 ADHD의 진단은 전문가를 통해 받으시길 바랍니다. 약물 효과 역시 개개인마다 편차가 있으니, 전문가의 처방에 따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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