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계엄령이라는 단어로 도배되었다. 계엄령? 그 계엄령?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그 계엄령? 맞다. 그 계엄령이었다. 한국사에서 암기하는 건 너무 고역이었지만, 그 시간에 마주한 계엄령은 끔찍해서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독재, 국민들의 피, 연대, 힘겨운 시간들, 끔찍한 트라우마
지금은 한 밤이었다. 바른생활을 하기 위해 저녁 루틴을 마친 늦은 시간이다. 예정대로라면 난 지금 침대에 누워야 한다. 가짜뉴스라기엔 저 대통령 입에서 계엄이라는 단어가 생생히 나왔고, AI 영상도 아닌 것 같았다. 뇌로 피가 한 번에 몰리는 것 같다. 어색한 그림인데, 진짜긴 한 장면. 그럼 무장 군인들이 돌아다니는 건가? 이제 우리는 자유가 없는 건가? 불안감들이 나를 뒤덮었다. 쥐어있는 핸드폰을 놓을 수 없었다. 단톡방에서 국회에서 계엄령 해제를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근데 또 국회의사당 앞을 국회의원들이 못 들어가게 막고 있다고 한다. 법으로 국회에서 계엄 해제할 수 있게 정해놓고, 국회의사당 입구를 통제하면 안 된다고 정하진 않았으니 괜찮은 건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짜증이 났다.
감정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 의원이 담을 넘는 영상을 봤다. 진짜 희한한 나라다. 어쨌든 들어가서 투표만 하면 되니까 담을 넘으면 된다. 그 와중에 친구가 길거리에 탱크가 돌아다니는 사진을 보내왔고, 어떤 군인은 국회 창문을 깼다고 했다. 저 군인도 우리 또래일 텐데, 유튜브 가짜사나이에서 봤던 특전사는 신체 능력이 대단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전장에서 실전 연습을 한 군인들이 한순간에 국회의원들 제압하고도 남을 것이었다. 그들도 그들만의 사정이 있겠지. 지난 탄핵 때 시위에서 친구들을 만났지만, 친구는 자신의 군 생활을 했던 의경 후임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언제나 사건을 일으킨 사람은 현장에 없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몇 시간 만에 국회에서는 계엄 해제가 가결되었다. 근데 또 국무회의를 해야 한단다. 약간의 마음이 놓였지만, 대통령의 등장을 기다리다 지쳐 잠에 들었다. 아침에 보니까 새벽이라 국무회의 못했다고 한다. 웃기는 나라다. 전 국민이 단체로 불면증에 걸렸다. 몇 시간 못 잤지만 난 집에 있었어도 낮에 잠을 보충하지도 못했다. 내가 복용하고 있는 ADHD 약 콘서타는 각성 효과가 있어서 잠을 잘 수 없다. 그렇다고 졸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콘서타 복용 이후로는 비슷한 효과가 있는 커피도 마시지도 못한다.(마시면 이틀 동안 두통으로 고생한다.) 나라 때문에 내 컨디션이 말이 아니다.
이렇게 계엄령을 겪은 세대가 갱신되었다. 그 난리 속에 밖으로 나가면 안 되겠다. 집에 있는 식량으로는 며칠 버티겠다. 언론 출판이 통제된다는데, 그럼 인터넷은 되는 건가? 마침 일본에 있는 친구는 네이버 카페가 접속 됐는데, 우린 되지 않았다. 이거 진짜 아니야? 머릿속이 전쟁이었다. ADHD를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에 때문에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누구는 그 시간에 민방위에 있었고, 어떤 군인은 휴가에서 복귀하기도 했다.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인 21세기에서 그 공포감은 실제로 다가온다. 내가 ADHD라서 과한 불안을 느낀 것도 맞는데, 나라가 안전하지 못한 것도 맞다. 난 아직도 계엄이 다시 일어날 것만 같다. 안 그래도 위쪽에서 맨날 풍선 보내서 무서운데!!! 안전한 나라에서도 나는 공포감을 느낄 텐데, 이 나라는 나를 긴장 상태로 만든다.
전쟁의 아픔이 있고 휴전 중인 나라에서
거짓말 같이 21세기에 전쟁하는 나라도 있는데
학교에서 과거 계엄령으로 인해 얼마나 끔찍한 비극이 있었는지 배우는 나라에서
마지막 계엄령이 불과 44년 전인 나라에서
야밤에 새로운 계엄령이 선포됐다.
이런 트라우마가 있는 나라에서 계엄령이 내려졌다 해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