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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 밥밥 Aug 17. 2024

눈물의 글쓰기

울컥울컥 키보드를 두들겼다. 눈물이 나면 쓰던 글을 멈추고, 침착해지길 기다렸다. 아빠를 위한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마무리하지 않으면 아빠를 추억하지도, 애도하지도 못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는 아직 아빠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잠에 들기 전에도 아빠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가 머릿속을 잠식하고, 그때 그랬었지 하다가도 울음이 터졌다. 마냥 슬픔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 침대에서 벗어나 책을 꺼내보기도 하고, 괜스레 인스타그램을 뒤적거리거나 밀려있는 메시지에 답장을 해보았지만 그런 것들은 소용이 없었다. 아빠의 죽음에 대한 슬픔, 사랑, 죄책감, 허무함 여러 감정들이 마구 꼬여 집착하고 있다. 어지럽게 널브러진 것들을 있는 힘껏 다해 표현하고, 아빠의 표정, 목소리, 말투, 행동 모든 것들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연결 지어야 한다. 아빠는 그냥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라 딸들을 향해 웃음을 짓거나 자기 볼링공을 갖고 있을 정도로 애정하는 취미가 있었고, 어떤 날에는 성실하게 땀 흘리며 노동하고, 처음 접하는 것들에 대해선 미숙하고 실수했던 아주 평범한 사람의 삶이었다는 것을 써내야만 한다. 막연하게 이 글을 끝내야지만 아빠를 내 마음속에서 잘 보낼 수 있을 거란 강력한 확신이 든다.


글은 머릿속 어딘가에 개개인이 간직하고 있던 의미, 생각, 추상을 재구성한다. 쓰기 위해 값어치 없는 현실을 형용하여 문장을 만든다. 슬픈 가정사를 담아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쓴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엉엉 울었다. 나는 친엄마가 어렸을 때 집을 나갔는데, 지금은 새엄마랑 성씨가 다른 오빠 2명과 살고 있어. 별로 행복하지 않은 나랑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고, 너희들이 참 소중해. 대충 이런 내용의 글이었는데, 낙엽만 보고 꺄르르 거리는 사춘기 여중생의 감성으로 친한 친구의 가정사를 담은 편지는 울고도 남았다. 그때 처음으로 공감과 위로라는 감정을 느꼈다. 정상 가정인 친구들이 그들과 다른 나의 가정사에 흘리는 눈물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마냥 고맙다는 감정보다는 내 글이 타인에게 어떤 동요를 일으켰다는 쾌감과도 같은 것이었다. 글만이 가지는 엄청난 힘이 있다고 믿는다.


글의 번지르르함에 반해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많은 작가는 가난하고, 굶어 죽는다고 했다. 가난하고 어린 내가 다 자란 나까지 불쌍하게 만들 수 없었다. 쇠 부딪히는 소리가 정신없고 시끄러운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빠에게 데려가서 유치원생인 나에게 그 여자는 너네 아빠가 힘들게 일하는 거 너네도 알아야지라고 말했었다. 그 말은 나에게 깊게 새겨졌고, 그 이후로 매일밤 이불속에 누워 아빠가 다치지 않게 해 주시고, 꼭 돈을 많이 벌게 해 주세요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기도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는데, 아빠가 술을 끊고 제가 꼭 성공하게 해 주세요라는 내용으로 약간 바뀌긴 했다.


작가의 꿈은 금방 접었지만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장래희망을 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에게 미래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떤 것들을 꼭 해결해내야만 하는지 우선적으로 생각해 내야 하는 것이었다. 집안에는 매일 같이 언성을 높이는 가짜 부부, 급식비를 매번 밀리는 가계 재정, 한 겨울 추위를 교복 마이 하나로 버텼던 초라함 같은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되고 싶은 건 사치에 가깝고, 그저 당장의 허름함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왜 나만 이런 잘못됨을 견뎌야 하는지, 사회에 어른들은 뭘 하고 있길래 날 구하러 오지 않는 건지를 생각했다. 분명 내 사정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거라고 답을 내렸다. 어렸을 때 헌 집을 새집으로 바꿔주는 러브하우스, 생계가 어려운 사연에 모금을 하는 나눔 0700 같은 TV 방송 프로그램이 유행을 했어서 그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주변만 둘러봐도 한 반에 한두 명 정도는 나처럼 불쌍하다는 소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알려지지 못해서 도움을 받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왕 바꿀 거 한 번에 효율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기사를 쓰면 나쁜 사람들도 혼내주고, 사람들이 다 같이 관심을 가져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아빠는 정말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새엄마가 괴롭혔고, 돈이 없어서 힘들어요. 아무도 관심 없는 기사를 쓰고자 기자를 장래희망으로 선택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학원에 다닌 적도 없었지만 가고 싶은 대학교가 생겨서 고등학교 때는 전교 3등까지 했었다. 나이가 입시 시기에 맞춰질수록 우리 집이 얼마나 열악한지 맨 몸으로 부딪혔고, 어쩔 수 없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다행히 나는 목표로 하던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글 쓰는 직업을 포기했다. 현장에서 겪어보지도 않고 미디어의 부정적인 역할, 한계점을 달달 외웠는데, 내 기대와 다른 언론이 실망스럽게 느껴졌다는 핑계를 댔다. 더 솔직하게는 나보다 더 똑똑해 보이고, 논리적인 글을 쓰는 동기들을 보며 패배감 때문이었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데, 저런 애들이랑 경쟁해서 언론 고시를 붙을 수 있을지 두려움과 자격지심에 절여져 있었다. 글의 힘을 믿으면서도 나는 그런 단단한 글을 쓰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글만을 위해 다시 써보려고 한다. 글의 거창한 부가적인 효과를 기대하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써 내려가고 싶다. 나만이 알 수 있는 아빠를 노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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