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 명의 일행은 각자 다른 곳에서 출발하여 유럽에서 만났다. 기는 캐나다에서 왔고, 마르셀로는 리오에서 왔으며 나는 한국에서 왔다. 셋이 크루즈여행을 하기 위해 베니스에서 떠나는 코스타 파볼로사(Costa Favolosa)라는 이태리 호화여객선을 타기로 했다. 나는 사업상 유럽에 온 지가 10일 가량 된지라 일 끝나고 친구들과 조인하여 크루즈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타는 배는 세계 각 나라에서 온 3,000명 가량의 승객들로 가득 찼다. 유럽계의 중년 부부가 주류를 이루었다. 중국, 일본 사람들도 있었으나 한국인은 나 혼자 밖에 없었다.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은 크루즈에 대하여 잘 모르거나 대중화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이태리 베니스를 출발하여 그리스 올림피아, 터키의 이즈미와 이스탄불을 거처 크로아티아의 드부로브니크를 들러 다시 베니스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나는 스무 살 때 친구 알렉산드리가 크루즈에서 일하고 있어서 방문한 적이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호화스러운 분위기에 반해서 크루즈에 일하기 위해서 훈련도 받고 시험도 보았으나 떨어져서 결국 일은 하지 못했다. 그때 당시 참 안타까웠는데 지금 이렇게 다시 크루즈에서 여행자로 다시 탈 기회가 있어 감회가 새로웠다. 이 여객선 안에는 운동장, 수영장 테니스 코트, 헬스장부터 모두 호화스런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식사도 최고급 호텔 식으로 24시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갈라 저녁 파티 때는 턱시도 정장을 입고 저녁을 먹고, 칵테일파티도 한다. 생음악도 테마 별로 있어 재즈, 클래식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콘서트가 각 살롱 별로 있어서 각자가 좋아하는 취미에 맞게 시간을 맞추어 가며 즐길 수 있다. 터키에 가는 날에는 파티 드레스 코드가 아랍 식인데, 종업원들이 아랍 옷을 입고 다니며 써빙한다. 그리스에 갈 때는 그리스 음식과 그리스 음악을 틀어 준다. 파티도 하루는 아리비안 나이트, 다른 하루는 카니발과 댄스클럽 등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우리의 저녁 테이블에는 일행 3명 이외에 혼자 여행하는 2명의 여행자와 자리를 함께했다. 크리스는 영국에서 온 공대 출신의 30대 신사이고, 피터는 인디아계 영국인으로 올해 70세다. 딸이 선물로 크루즈 여행권을 사주어서 혼자 여행을 한다고 한다. 피터는 40년간 살아온 부인과 이혼한 지도 얼마 안 되어 머리도 식힐 겸 혼자 여행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딸이 4명 있는데 아들이 없다며 나를 아들 삼으면 좋겠다고 하여 우리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둘째 날 갈라 파티에는 영국 신사 크리스가 멋진 턱시도를 입고 와서 우리는 007이라고 닉네임을 붙여 주었다. 갈라 디너에 사람들은 최고로 우아하고 시크한 복장으로 참석한다. 촛불이 있는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저녁을 먹은 후 대형 오페라극장에서 선장이 주관하는 쇼에 가서 샴페인을 마시면서 저녁 시간을 즐겼다. 낮에는 지중해의 찬란한 햇빛 아래 야외 수영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면서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었다. 문득 세상에 나처럼 자유스럽고 행복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You are rich? I am free.
우리 배의 첫 번째 목적지는 이태리의 항구도시 바리다. 바리는 이태리 남쪽에 위치한 항구도시로서 휴양도시이며 어족 자원이 풍부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3시간 정도의 단기 체류지였기에 브라질 친구들은 자전거를 렌트 하여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고, 나는 그냥 뛰기로 했다. 나는 시내 구경할 때 그룹으로 함께 다니는 것보다 뛰어다니면서 운동도 하며 도시를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배 안에는 먹을 거리가 풍족해서 칼로리를 제거하려면 관광과 운동을 겸할 수 있는 달리기를 선호한다. 달리는 여행은 도시 사람들과 더욱 가까이하며 교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찬란한 태양을 안고 아름다운 해안가를 따라 한 시간 정도 뛰고 있을 때 어부들 여럿이 모여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 어부가 배에서 꺼내온 몇 개의 광주리를 밖에다 내놓고 사람들이 주위를 맴돌며 구경하고 있어서 나도 무엇인가 하고 가 보았다. 전복 같기도 하고 굴 같기도 한 생전 처음 보는 해산물을 팔고 있었다. 이곳 이태리 사람들도 날것으로 먹기에 나도 먹겠다고 하니 몇 개를 주었다. 하나 먹어 보니 색다른 맛이 있어서 계속 먹었는데, 워낙 작아서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참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먹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거기서 30분 정도 뛰어가니 돌아오는 길 한구석에서 어부들이 모여 바다가재같이 보이는 작은 랍스터를 먹고 있었다. 랍스터들이 살아서 꿈틀꿈틀 기어 다녔다. 나는 십유로 밖에 들고 나오지 않아서 5유로는 굴 먹는데 쓰고, 5유로밖에 없다고 하자 주인아저씨가 5유로를 받아 들고는 비닐 보따리 한가득 랍스터를 담아 주었다. 그리고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가시가 많고 껍질이 딱딱해서 머리 쪽부터 천천히 씹으니까 안에 있는 살이 조금씩 빠져 나왔다. 입을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먹으라고 “Piano, Piano(천천히)" 하며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속으로‘이게 웬 떡 이야’ 하며 봉지를 들고 항구 구석에서 랍스터를 하나씩 집어먹기 시작했다. 랍스터는 왕새우 4배 정도 크기였는데, 그 맛은 내가 먹은 회 중 최고의 맛이었다. 두 마리를 먹고 비닐 봉지를 들여다보니 한 30마리는 족히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구석에 앉아서 배가 출항하는 시간도 다가오고 해서 정신없이 먹었다. 근처에 있는 한 어부 할아버지가 말을 잘 못하는 동양인인 내가 걱정이 됐는지 나한테 와서 천천히 조심해서 먹으라고 자상하게 걱정해 주고 가셨다. 단돈 십유로로 이렇게 싱싱하고 맛있는 해산물을 먹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첫 번째 경 유지에서 참 좋은 경험을 하고 다시 배로 돌아왔다. 운동도 하고 회도 먹고 해서 기분이 좋아 배 갑판에 있는 수영장에서 일광욕을 즐겼다. 이 대형 여객선에 수 천 명의 사람들이 데크 수영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야외수영장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두 번째 날은 웰커밍 갈라 디너가 준비되어 있었다.
저녁 테이블에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는 촛불이 커져 있었고, 들어가는 입구에는 유니폼을 입은 웨이터들이 나란히 줄을 서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우리 테이블에는 영국 신사 크리스가 멋진 턱시도를 입고 앉아 있었고, 인디언 계 피터할아버지도 양복을 빼 입었다. 메뉴는 전식에서 후식까지 한 다섯 가지 메뉴가 번갈아 나왔다. 연어 에피타이져, 스프. 파스타, 고기, 샐러드, 치즈 후식 순이었다. 샴페인으로 건배한 후 웨이터들이 아랍 식 복장을 하고 나와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7일 동안 이렇게 초호화 음식을 먹으니 살이 2킬로는 찐 것 같다. 기와 나는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하고 스파에 가서 사우나도 하고 일광욕도 즐겼다. 휴식하는 유리 창문 침대 위에서 보이는 바다의 광경은 정말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번 여행에서는 세계에 곳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친하게 되었다. 여자친구와 놀러 온 이태리 친구 맥스(Max)와 19세 소녀 줄리아(julia)와 그녀 가족, 스위스의 모녀 사브리나(sabrina), 여자 3명이서 놀러 온 이태리의 발렌티나(valentina) 등 여러 친구들과 즐거운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저녁이 끝난 후에는 대극장에서 선장이 주관하는 쇼가 있었다. 서커스, 피겨스케이트 묘기 등 다양하고 프로그램이 이루어졌다. 미스터 파불로사(Fabulosa) 쇼도 있었는데, 뚱뚱한 아저씨들이 나와서 우스꽝스러운 쇼를 하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두 번째 목적지인 그리스 항구에 도착하자 우리 일행은 택시를 타고 고대 그리스의 도시이자 올림픽의 발상지인 올림피아에 도착했다. 그리스는 서유럽에 비해 저개발국가인 것 같았다. 마치 브라질에 온 기분이었다. 광활한 평야와 강한 햇빛 그리고 햇볕에 그을린 그리스 사람들의 피부에서 남미의 정취가 느껴졌다. 스포츠외교학 전공자인 나에게 그리스 올림피아는 큰 의미를 지닌 곳이었다. 올림픽과 스포츠를 연구하는 나로서는 올림픽의 발상지인 올림피아에 온 것이 감개무량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브라질 사람들처럼 정이 많아 보였다. 우리는 그리스 올림픽 마라톤의 결승점에서 사진도 찍고 운동장도 한 바퀴 돌았다. 몇 시간 만에 다녀온 그리스였지만 나에게는 색다른 이미지를 남겼다.
다시 배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 배에서 이글을 쓰고있다. 이제 20분 후면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인 크로아티아에 도착한다. 사방이 유리 창문으로 된 레스토랑에서 흘러나오는 ‘Tear in Haven’ 이란 노래가 절벽에 세워진 빨간색 지붕으로 된 고대건물들과 어우러져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장면을 연출해 낸다. 유럽 사람들과 일본사람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이곳 두부로부니크라 한다. 아드리아 해에 위치한 이곳은 동부유럽의 대표적인 휴양지다.
유명한 작가인 버나드 쇼가 “두브로부니크를 빼놓고는 천국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탄 크루즈는 너무 커서 부두에 들어가지 못하므로 바닷가에 닻을 내렸다. 대신 작은 배들이 우리를 실어 날랐다. 우리는 산에 올라가 사진을 찍고 나서 일행들은 버스를 타고 투어를 하기로 했다. 나는 운동을 하고 싶어 뛰어서 해안 구경을 하기로 했다. 산비탈에 어떻게 그렇게 예쁜 집들이 들어설 수 있는지 감탄의 연속이었다. 나는 해안선을 따라 1시간 30분간 뛰어다니며 도시를 마음껏 느끼고 바닷가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일광욕을 하다가 다시 배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