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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선 Nov 11. 2022

여름방학

무령 폭포

무령 석탄 광업소 이른 아침,

사택 골목마다 여름방학을 한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어른들은 다른 데 가서 놀라며 욕을 하거나, 그래도 안되면 바가지로 물을 뿌렸다.

신작로 언덕길에 동발을 가득 실은 제무시가 캑캑대며 올라올 때면, 네댓 명의 아이들이 제무시 뒤꽁무니에 매달려, 안개 같은 매연을 맛있게 먹었다. 운전사의 심한 욕지거리를 들어야만 제무시에 돌을 던지며 도망을 갔다.


여름 햇볕이 쨍쨍한 날이면 무령 폭포로 갔다. 무령 폭포 아래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진녹색의 무령 소가 있었는데, 일 년에 한 번씩은 물귀신이 나와서 아이들을 끌고 들어간다는 소문 때문에, 멱도 못 감고 무령 소 끝, 도랑에서 가제를 잡아 구워 먹었다. 빨갛게 익은 가제는 고소하긴 했지만 딱딱하고 까끌거려서 반쯤 먹고 버리기 일쑤였다. 누가 잡은 가제의 집게발이 큰가 내기도 했고, 덩치가 제일 큰 가제의 집게발에 방아깨비를 물려주면, 방아깨비는 여지없이 두 동강이 났다. 여름이지만 무령 소 물은 얼음장같이 차서, 금세 새파래진 입술로  햇볕에 뜨거워진 자갈밭에 누워서 추위를 녹였다.

집에 올 때면 날카로운 톱 소리가 들리는 제재소에 몰래 들어가, 쌓아놓은 동발 더미에 사는 장수하늘소나 집게벌레를 잡았다.  삼십 분도 안 돼서 라면 봉지에 반은 찼다.

제재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상여를 보관하는 상엿집이 있었는데, 뚫어진 송판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면 햇빛을 받은 상여가, 다소곳이 나무 인형과 함께 광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섬뜩함을 느낄 때쯤 한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줄행랑을 치면 안을 들여다보던 아이들 모두가 고무신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제재소까지 도망을 갔다.


우리 본부가 있는 산속에서

커다란 가랑잎으로 모자를 만들어 쓰고, 어제 텔레비전에서 봤던 전우처럼 군가를 부르며 북한 괴뢰군이 살포해놓은 삐라도 주웠다. 삐라 두 장에 연필 한 자루,  삐라 읽으면 간첩이라고 선생님이 겁을 줘서 내용은 읽지 않았다. 국민학교 때 내가 받은 상품이라곤 삐라 주워서 받은 연필밖에 없는데, 민수는 학기마다 우등생 상품으로 열두 색 왕자 파스나 공책 열 권을 받았다. 공부는 지지만 싸움은 내가 이긴다.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방학숙제는 한 장도 하지 않고 놀기만 했다. 밤에도 동네 어른들이 시끄러우니까 자빠져 자라고 소리칠 때까지 사택 골목을 뛰어다녔다.

광산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기에 밤이면 서늘해서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잤다. 자기 전 아버지는 항상 라디오를 들었는데, 주파수를 잘못 맞추면 어김없이 북한 방송이 들렸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급하게 다이얼을 돌렸다. 안기부에서 북한방송 듣는 사람들은 도청을 해서, 잡으러 온다는 거였다.

무령 폭포 놀러 갔다 온 날 밤에는, 항상 무령 소 귀신에 쫓기다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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