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로선 Nov 11. 2022

민수아버지의 죽음

매몰사고



아줌마들의 수다 소리에 선잠을 깼다.

갱이 무너져 두 명이 죽었는데 그중에 한 명이 민수 아버지다. 매몰사고는 일 년에 한두 번은 늘 있었던 일이라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만, 친구 아버지가 사고 난 건 처음이라 기분이 이상했다.


작년에 아버지도 사고를 당해 하루 동안 갱 속에 갇혀있었다.

엄마를 따라 식구들 전부 울면서 아버지가 구조되길 갱 입구에서 밤을 새워 기다린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눈을 가린 채 들것에 실려 나왔다.

갑자기 어두운 데 있다가 햇빛을 보면 실명을 한다는 이유로 눈을 가렸는데, 가려진 천 쪼가리 밑으로 흐르는 탄가루 썩인 아버지의 검은 눈물을 보았다. 그때 나는 알았다.

아버지도 울 수 있다는 것을......


외동아들 민수는 집안의 자랑이고 민수 아버지의 자부심이었다.

공부도 잘해서 전교에서 항상 5등 안에는 들었다.

다른 집은 자식들이 세네 명은 기본이고 일곱 명까지 북적거리는 집도 있었는데, 하나 낳아 잘 기르자는 나무 전봇대에 붙은 포스터에 걸맞게 민수는 잘 길러지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일 원짜리 눈깔사탕 사 먹을 때 민수는 이십 원짜리 뽀빠이를 먹었으며, 나무로 만든 칼로 칼싸움을 할 때, 민수는 이백 원이나 하는 장검을 사서, 하얀 칼을 빼들고는 도전하는 적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렸다.

민수네 집은 가난했지만 민수는 부자였다.

오늘 민수랑 대나무 잘라서 물총 만들기로 했는데, 민수 아버지가 죽어서 물총은 못 만들겠다.


호기심에 민수네 집 근처만 가도 할아버지 제사 때나 맡을 수 있던 향냄새가 은은한 슬픔으로 사택 전체에 번져갔다.

어린 상주는 삼베로 대충 만든 옷을 입고 동네 아저씨들과 맞절을 했다.

'아이고, 아이고'

어른들이 시켰는지 곡소리를 내는 민수의 낯선 모습도 무서웠다. 점방 텔레비전에서 봤던 귀신처럼 민수 엄마도 머리에 새끼줄을 감고 울고 있었다.


삼 일째 되던 날 상여가 사택을 한 바퀴 돌고 땅따먹기 하던 텅 빈 공터를 지나 신작로 땡볕으로 나가고 있을 때, 흔들리는 상여에 매달린 못생긴 나무 인형들도 현기증에 멀미를 하는 것 같았다.

반쯤 실성한 민수 엄마 우는소리에 미루나무 허리에 달라붙은 참매미들도 악을 쓰며 곡소리를 내주었다.


땡그랑땡그랑 상여 소리를 하는 목청 좋은 노인이 흔드는 요령 소리를 따라 버드나무 지팡이를 짚고 민수가 제일 무서워하는, 도깨비불 아른거리는 싸리제 공동묘지로 가고 있었다.

恨 서린 상여가 질펀하게 쏟아놓은 설움으로  가득한 신작로 언덕길에, 제무시가 캑캑거리며 올라와도, 그날은 사택 아이들 누구도 제무시 뒤꽁무니를 따라가지 않았다.


이틀이 지나 물총 만들려고 민수를 찾아갔지만 민수는 며칠씩 몸살을 앓았고, 민수 엄마는 벽에 머리를 기대고 막걸리를 주전자 채로 마시고 있었다.


밤늦게 사택 공중변소 가는 길에 멀리 바라본 싸리제 공동묘지에선, 도깨비불들이 민수 아버지의 혼과 함께 성대한 잔치를 벌이고 환영의 춤을 추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방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