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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선 Dec 26. 2022

광부의 딸 큰누나의 청춘



식모 살러 간 누나


겨울이었다.

우체부 아저씨가 자전거에 소포 꾸러미를 싣고 눈길을 미끄러져왔다. 제천에 식모살이 간 큰누나가 어깨동무 어린이 잡지와, 방바닥에 뉘어놓으면 눈을 감는 노랑머리 인형도 보내왔다.

엄마 아버지에게는 첫 월급이라며 독립문 표 내복 한 벌씩 누런 밀가루 포대로 곱게 포장을 해서 보내왔다. 소포를 보자 엄마는 돌아앉아 울었고

우리 삼 남매는 서로 보겠다며 싸움을 했다.



한 달 전

큰누나가 식모살이 가기 전날 밤 엄마는 밤새워 우셨고, 열여덟 큰누나도 집을 떠난다는 생각에  겁이 났는지 잠을 자지 못했다.

"언니 거기 가면 계란프라이 맨날 먹을 수 있어?"

동생이 부럽다는 듯 물어봤다. 광산에는 계란이 귀해서 아버지만 하나씩 드셨다. 우리들은 소풍 때나, 운동회날 아니면 계란은 구경도 못했다.

일주일에 한 번 오는 계란 아줌마는, 양은 다라에 짚으로 만든 계란꾸러미를 가득이고 사택을

바퀴 돌았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계란 일곱 개를 사서 출근 밥 드시는 아버지 밥그릇에 하루에 하나씩 계란프라이를 올려놓았다.

동생 미숙이는 계란프라이 먹는 아버지 입을 침 흘리며 쳐다보다가 엄마에게 호랭이가 물어갈 년이란 욕을 들으며 쥐어 박히곤 했다.

"거기 가면 계란프라이 맨날 먹을 수 있어?"

언니를 끓어 안으며 또 한 번 물었다.

"그럼 부잣집이니까 계란프라이 매일 먹을 걸 언니만 먹어서 미안해, 우리 미숙이 언니가 돈 벌면 계란도 사주고 인형도 사줄 테니까 공부 잘하고 있어."

동생 팔베개를 해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렇게 불안한 잠을 잤고 큰누나와 엄마의 베갯잇은 축축이 젓어있었다.

누나가 새벽밥 반 공기도 못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아도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가 어떤 말이라도 하면 우리 여섯 식구 모두가 울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애써 누나를 보지 않았다.

눈이 오고 있었다.

탄가루 날리던 까만 신작로가 하얗게 덮이고 있었다.

기차에서 먹으라고 삶아주었던 계란도 동생들 먹으라고 남겨놓은 채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버스 첫차를 타고 큰누나는 식모 살러 떠났다.

바퀴에 쇠사슬 체인을 감은 버스가 신작로 언덕을 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엄마는 함박눈을 맞으며 울고 있었다.



누나의 편지


한 달이 지나 큰누나에게서 소포와 편지가 온 것이다.

'부모님 전 상서'

이렇게 시작되는 편지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식모살이의 고달픔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와 아버지는 편지를 번갈아가며 읽다가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다시 오라고 해야겠어 눈에 밟혀서 잠을 못 자겠구먼, 차라리 옆집 복순이 다니는 공장에 보내는 게 났지."

복순이 누나는 서울 가리봉동 옷 만드는 공장 시다로 일하고 있었는데, 명절이면 나팔바지에 하얀 머리띠를 하고, 영화배우처럼 팔랑거리며 사택을 돌아다니면, 광산의 젊은 총각들이 휘파람을 불며 희롱을 했었다.

"내일 전보를 치던가 전화를 하던가 해야겠어요."

가을에 바른 문풍지가 엄마와 함께 울었다.

다음날 엄마는 거액의 돈을 주고 우체국에서 시외 전화를 했다. 누나가 식모 사는 집에서 봄이 올 때까지만 있어달라고 사정을 했단다.

그렇게 큰누나는 겨울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누나의 귀가


신작로 길을 따라 진달래가 피고, 우체국 앞 살구꽃 봉오리가 터질 무렵 누나가 막차를 타고 돌아왔다.

여섯 식구 모두가 누나를 가운데 두고 울었다.

단발머리로 떠났던 누나는 머리를 한 번도 자르지 않았나 보다. 윤기 없는 머리가 어깨를 었고, 손은 동상에 걸려 봄이 되어도 벌겋게 부어있었다.

"언니 과자 안 사 왔어?"

"이 호랭이가 물어갈 년이 언니가 이 꼴인데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으이구 속 터져."

동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화풀이가 시작됐다.

누나가 퉁퉁 부은 손으로 커다란 옷 가방 지퍼를 열었다. 동생에겐 종합 선물세트 과자, 나에게는 화약 넣고 쏘는 딱총, 작은 누나는 샤프연필 그중에서 샤프연필은 너무 신기했다. 모나미 볼펜도 아닌 것이, 누르기만 하면 끝없이 연필심이 나왔다. 연필심 다섯 개를 부러뜨리고 작은누나에게 등짝을 몇 대 맞았다. 샤프 연필심은 학교 문방구에는 없어서 읍내 큰 문방구에서 사야 한단다.

엄마는 누나의 밥상 옆에 앉아 시래깃국에 밥을 말아주며 밥을 다 먹을 때까지  훌쩍거렸다.

"엄마 복순이가 편지했는데 자기네 공장 사원 모집한데 거기 가기로 했어."

"그래 아무렴 남의 집 식모 사는 거보다는 낫겠지 아무 생각 말고 일단 푹 쉬고 동상 걸린 거나 다 났거든 그때 가거라."

공장에 가면 밤에 공부해서 검정고시도 볼 거고 동생들 고등학교까지는 자기가 책임지고 보낼 테니까 걱정 말라고 했다.

큰누나는 국민학교 3학년까지밖에 다니지 못했다. 광산으로 이사 오기 전 농사를 지었는데 동생들 보살피고 농사 일하느라, 학교는 일주일에 몇 번 가지도 못했다고 한다.

가끔씩 누나가 글씨를 쓸 때면 맞춤법이 틀려서 동생들이 바보라고 놀렸지만 누나는 화 한

내지 않고 빨개진 얼굴로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나를 앉혀놓고 넋두리를 했다.

"너 커서 큰누나한테 잘해야 한다. 널 업어서 키웠어 이놈아, 너희들 보살피느라 학교도 못 다니고, 아들이 너 하나니까 누나들이나 동생이 시집가고 아버지 죽으면 네가 친정이 되는 거란다."

누나는 보름 동안 병원에 다니며 동상 치료를 했고 점점 예전에 건강했던 누나의 모습을 찾았다.



진달래 꽃


"누나랑 나물 뜯으러 갈까?"

누나가  뽀빠이를 사주며 꼬드기고 있었다.

"누난 왜 작은누나도 있고 미숙이도 있는데 나랑 갈려고 해?"

"너는 남자니까 든든해서 그렇지. 산에서 호랑이 나오면 네가 누나 지켜줄 거잖아."

큰누나가 활짝 웃으며 장난을 쳤다.

"걱정하지 마 누나, 우리 반에서 내가 싸움 제일 잘해. 호랑이 열 마리도 문제없어."

왠지 모르게 큰누나는 정말 내가 지켜줘야 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누나 열흘 있다가 복순이 있는 공장에 가기로 했으니까, 너 편지 자주 해야 한다."

누나가 취나물을 한 움큼 뜯으며 말을 했다.

"복순이 누나 발랑 까졌다고 엄마가 욕했는데 같이 안 놀면 안 돼?"

걱정스러웠다. 착한 우리 큰누나를 발랑 까지게 만들 나쁜 복순이 누나 같았다.

"복순이가 얼마나 착한데 집에 올 때 옷을 그렇게 입어서 그렇지, 서울 멋쟁이들은 다 그렇게 입고 다녀."

나를 안심시켰다.

진달래꽃을 따먹으며 누나와 바위에 말없이 앉아 봄 햇살도 같이 먹었다.  조용한 산골 때 이른 뻐꾸기 소리만 들렸다.

누나를 올려다봤다. '반짝' 봄 햇살에 누나의 눈물이 보였다. 언제부터인지 누나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나 보다.

"누나 왜 울어?"

나도 그만 엉엉 울어 버렸다. 아무리 누나가 달래줘도 울음이 그치질 않았다. 그냥 계속 울고 싶었다. 오줌 싸서 엄마에게 빗자루로 맞을 때보다 더 길고 서럽게 울었다.

"누나 안 울게 너도 빨리 그쳐."

한참을 누나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어버렸다.

개울가에 세수하러 왔다.

"너 누나 운 거 엄마한테 얘기하면 안 돼, 빨리 세수해 눈물 자국 보이겠다."

"누나 아까 왜 울었어?"

"진달래가 너무 예뻐서 울었지. 그러는 너는 왜 울었어?"

"누나가 우니까 울었지."

개울가에 버드나무를 잘라 피리를 만들어 누나에게 주었다. '삑삑' 누나가 피리를 불었다. 소쿠리 가득 봄나물을 뜯어서 내려오는 길

신작로에 시커먼 매연을 뿜어내며 제무시가 오고 있었다. 동발을 가득 실은 제무시 기사와 조수가 누나를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누나 얼굴이 진달래 이 됐다.

"저 조수 놈이 누구한테."

옆에 있던 내가 욕을 하며 주먹감자를 먹이고 짱돌을 던져 버렸다. 누나가 깔깔대며 어깨를 쳐주었다.

"이제 그만해 저형들 겁나서 도망간다."

정말 제무시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다. 누나가 말렸지만 한참을 씩씩거렸다. 제무시 뒤에 매달렸다가 저 조수 놈한테 꿀밤 한 대 안 맞은 애들이 없었다.


아카시아 향기가 광산의 모든 사택을 덮었을 때 큰누나는 또다시 커다란 가방에 옷을 챙겼다.

누나는 식모 살러 갈 때처럼 울지 않았다. 엄마도 많이 슬퍼하지 않았고 우리들도 웃으며 배웅을 했다. 버스가 싸리제를 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엄마는 또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고,  신작로 넓은 길에 아카시아 작은 꽃잎이 흩뿌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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