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손도손 살다가 봄볕 드는 담벼락 낡은 의자에 기대어 서로 비듬이나 털어주면서, 가끔 소중한 기억 하나 건져내, 우리의 지난 세월은 비교적 살만했다 주름진 미소를 지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살짝 졸릴 때 머리 위로 백목련 꽃 이파리 떨어지고, 배추흰나비 같은 벚꽃잎도 날아준다면 더 바랄 게 없지요.
그대 먼저 보내고 딱 하루만 더 살다가 오라고요?
그대는 참 이기적이군요.
그대 없는 마지막 하루를 나는 어떻게 살라고 약속해 달라 조르다니요.
그 하루는 우리가 살아왔던 세월의 무게만큼 앙상한 가슴에 내려앉겠지만 그래도 하루가
지나면 그대 만날 수 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참아볼게요.
빈 하늘 보며 참을 수야 있겠지만 뻥 뚫린 가슴엔 바람이 불고 바람 따라 휘파람 소리는 나겠지요.
지키지도 못할 약속 밥 먹듯 하며 살았지만
그대 먼저 보내고 딱 하루만 더 살겠다는
마지막 약속은 꼭 지킬게요.
나에게도 약속하나 해주시겠어요.
그대 아프지 않기로 약속해 주세요.
아프지 말고 살다가 늦은 저녁 산책하고
잠든 것처럼 평온하게 가신다면, 나는 다행이다
울다가 웃을 겁니다.
그대가 몹시도 아파 입원시키고 온 어느 봄날밤 그대가 설거지하던 싱크대에 기대어 앉아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그대는 알까요.
그때는 왜 그렇게 겁이 나던지요.
이제는 웬만한 일에는 눈도 꿈쩍 않는 건조한 나이가 되었지만 그대 아픈 것은 여전히 두렵고 겁이 나네요.
그대 먼저 보내고 하루만 더 살겠다는 마지막 약속 지킬게요.
그대도 아프지 않겠다는 약속 꼭 지켜주세요.
나와는 달리 약속 잘 지키는 그대를 믿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