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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선 Mar 22. 2023

큰누나의 겨울. 1



무령광업소 까만 신작로가 하얀 눈으로 덮이던 고립무원의 겨울밤, 두런두런 밤이 깊도록 엄마와 아버지의 한숨 섞인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일단 집으로 오라고 해야지 어떡하겠어. 폐병이면

공장에서도 쫓겨날 텐데."

자는척했지만 큰누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건 분명했다. 큰누나가 구로공단 봉제공장 간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폐병이 걸렸다는 얘기인 것 같다.

결핵이라는 착한 말도 있는데 그 누구도 폐병을 결핵이라 불러주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가 훌쩍거리고 가을에 발라놓았던 문풍지도

펄럭거리며 같이 울고 있었다. 언젠가 무령 극장에서 본, 여배우가 피를 토하며 죽는 장면이 떠올랐다. 전염될까 봐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떠나보내고 혼자서 죽어가는 폐병 걸린 여주인공.  갑자기 큰누나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 큰누나가 죽을 때 내가 꼭 옆에 있어줄 거라는 다짐을 하며 누나가 소포로 보내온 어깨동무 어린이 잡지를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큰누나의 슬픈 귀가


하루에 두 번 오는 버스의 막차는 한 시간이나 연착되고 있었다. 며칠씩 눈에 막혀 못 들어오는 날도 있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닌가 보다.

바퀴에 굵은 쇠사슬을 감은 버스가 함박눈 속에서 철커덩거리며 종점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맨 뒤 좌석에서 큰누나가 지친 손을 흔들었다.

지난겨울, 식모 살러 갔을 때보다는 손에 동상도 걸리지 않았고, 조금 야윈 거 빼고는 건강해 보였지만 간헐적으로 마른기침을 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한 움큼이나 되는 알약을 입속으로 털어 넣으며 헛구역질을 했다.

약을 먹으면 속이 쓰리고 울렁거린다고 했다.

옆에 있던 나도 독한 약 냄새를 맡을 정도였다.

"겨울방학하면 얘들 데리고 외할머니한테 가서 쉬거라. 사택 여편네들이 물어보면 공장이 망해서 잠시 내려왔다고 해. 워낙 수다스러운 여자들이라 폐병인 거 알면 신나서 떠벌이고 다닐 거다."

공장 다니던 다 큰 처녀가 아무 이유 없이 집에 내려와 있는 것도 흉이 되는 동네였으므로 엄마는 동생과 나에게도 입단속을 시켰다.

동생 미숙이랑 서로 큰누나 옆에서 자겠다고 투덕 거리다 내가 이겼지만, 누나는 양옆에 동생들을 끼고 불편한 잠을 잤다.

큰누나의 몸에서 춘천옥 아줌마의 향긋한 분냄새가 났다. 비록 폐병에 걸려서 왔지만 큰누나가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좋아서 자고 있는 누나 손을 놓지 않았다.



격리


윗목에 차려진  큰누나의 초라한 밥상.

다음날부터 큰누나는 밥을 따로 먹었다.

미숙이와 작은누나와는 달리 나는 폐병이란 것이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차라리 나도 폐병에 걸려서 큰누나와 겸상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큰누나는 단칸방에서도 격리되어 있었다. 눈싸움하며 놀다가도 문득 큰누나가 죽었을까 봐 문을 벌컥 열고 누나의 생사를 확인했다. 누나가 활짝 웃어주면 그제야 다시 나가서 눈싸움을 했다. 엄동설한 긴 겨울, 큰누나가 좁은 방에서 하는 일이라곤 내가 쓸 방울 달린 모자와 벙어리장갑을 뜨개질하는 것이 전부였다. 더러는 큰누나에게 맞춤법을 가리켜 주기도 했다. 큰누나의 최종 학력은 국민학교 3학년이 전부였다. 글을 읽고 쓰긴 했지만 맞춤법은 엉망이었다.

"누나 이거 틀렸어. 닥이 아니고 닭이야."

지적할 때마다 핏기 없는 큰누나의 하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너 커서 큰누나를 엄마처럼 대해야 한다. 너희들 육성회비 대느라 학교도 못 다녔어 이놈아!"

아버지의 술주정, 똑같은 말만 천만 번은 더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큰누나는 엄마와 동급이었고 가끔은 엄마보다 더 좋았다.

고드름이 내 키만큼 자라고 눈사람도 덩치가 커질 무렵 드디어 겨울 방학이 됐다.



누나와 약 받으러 읍내 가는 날


종점으로 내려가는 신작로에 동발을 가득 실은 제무시 트럭에서, 운전수와 조수 놈이 큰누나를 보고 휘파람을 불어댔다. 여느 때와 똑같이 주먹 감자를 먹이고 짱돌을 던져버렸다.

"너 아직도 저 형들하고 안 친해?"

"누나 놀리니까 그렇지."

큰누나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싸리재 고개를 캑캑거리며 숨차게 올라가는 늙은 버스,  의자에 앉아는 있지만 덜컹거릴 때마다 몸이 붕붕   뜨고 있었다. 큰누나와 눈이 마주칠 때면 누나손을 잡고 깔깔대며 웃었다. 험악한 비포장 신작로를 세 시간 달려 도착한 읍내는 별천지였다. 매끈한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수많은 버스와 트럭들, 내뿜는 매연의 매캐한 냄새조차도 향기로웠다. 터미널 옆으로 지나가던 기차는, 광산 촌놈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크고 괴물처럼 무섭기까지 했다. 기차는 태어나서 다섯 번째 보는 거다. 광산 문방구에서 파는 백 원짜리 장난감 총이 여기선 팔십 원밖에 하지 않았다. 이십 원씩이나 남겨 먹다니 학교 가서 소문내야겠다..

"누나가 자장면 사줄까?"

입안에서 미끈거리는 납작한 보리밥도 없어서 점심 도시락 하나 못 싸 오던 시절, 자장면 먹어봤다고 하는 놈들의 말을 들어보면 다 거짓말이었다. 어떤 맛이냐 물어보면 안 가르쳐 주지 약 올린다거나, 심지어는 까만 된장이라서 된장국 맛이라고 뻥치는 놈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진짜 자장면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누나는 자장면 안 먹어?"

중국집 사장의 눈치를 보며 자장면 하나만 시켰다.

"누나는 서울에서 많이 먹었어. 너 자장면 처음 먹지? 미숙이나 엄마한테는 자장면 먹었다는 말 하면 안 돼."

입 주위에 묻은 춘장을 닦아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누나는 끝내 닥꽝(단무지) 하나를 아삭아삭 집어먹고는 엽차 한 잔을  마셨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낮에 먹었던 자장면과 뽀빠이를 모두 토해냈다. 일 년에 한두 번 타는 버스였기에 차멀미는 당연한 것이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땐 벌써 밤 10시가 넘었다.

종점에는 외등 하나 없었지만 겨울 달빛이 밝아 무섭지는 않았다.


멀리서 들리는 아줌마들의 욕지거리하며 싸우는 소리, 아줌마 중에 한 명은 분명 엄마 목소리였다.

그렇게 입단속을 했지만 언니는 폐병약 타러 읍내병원 갔다고 미숙이가 떠들고 다닌 모양이다.

옆집 아줌마가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폐병은 무슨 폐병이냐며 엄마는 괜한 자격지심에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삿대질을 하며 싸우는 엄마를 큰누나가 매달리다시피 해서 끌고 들어왔다. 큰누나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목놓아 울었다. 눈물이 많은 누나였지만 소리 내어 우는 건 처음 봤다. 나도 큰누나를 흔들며 같이 울었다.

"사람들 입방아에 자꾸 오르내리면 더 안 좋은 소문만 나니까 내일 동생들 데리고 할머니 댁으로 가있거라. 너도 거기가 더 편할 거야."

나와 동생의 옷을 챙기며 엄마도 울고 있었다.


다음날 큰누나는 어린 동생 둘 손을 잡고, 눈보라 치는 신작로를 지나 종점으로 향했다.  

약초꾼 외할아버지가 기다리는 양평으로 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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