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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Mar 15. 2022

엄마, 배고파

땡땡땡 초등학교 급식 사태 이후

[Web발신]
(긴급) 땡땡땡 초등학교 급식 안내

학부모님, 안녕하십니까?
땡땡땡 초등학교에서 안내드립니다.
교육 공무 직원 미발령과 코로나19로 인해 학교급식의 어려움이 있어 학교급식이 다음과 같이 운영됩니다.

*학교급식 대체식 제공(빵, 음료 등)
*대체식 제공 기간 : 3월 7일(월)부터 조리실무사 채용 전까지
*대체식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경우 개별 간식 및 도시락 지참 가능합니다.
*급식시간은 기존과 같이 동일합니다.
(1-3학년) 3교시 이후/ (4-6학년) 4교시 이후
** 자세한 내용은 학교종이 가정통신문을 확인 바랍니다.

빠른 시일에 정상 급식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학부모님들의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2022년 3월, 새 학기가 시작한 지 불과 3일 만에 이 문자를 받게 되었다. 큰아이가 땡땡땡 초등학교에 입학한  5년째 되는 지난 시간 동안 대체식이 제공되거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대개는 기한이 정해져 있었고, 비단 우리 아이 학교만이 아닌 전국적인 규모의 파업이었다. 그래서 잠시 불편하더라도 모두가 동일한 불편을 감내해야 했고, 무엇보다 사전예고를 통해 충분히 대비할 시간이 주어져 감수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조리실무사 채용 시까지』급식실 운영이 무기한 중단되는 상황이고, 더욱이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만 해당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옆동네 초등학교와 자꾸만 비교되는 것이 마치 이상한 액체 괴물이 주변의 액괴와 합체하여 순식간에 덩치를 키워 나가듯 고약한 심술보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왜?

왜!


또 하나 더!!

단순히 조리실무사 인력난에 의한 문제로만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물음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잔잔한 호숫가에 무심코 던진 작은 돌멩이가 일으킨 진동이 물결의 파동을 만들어내듯이 맘 카페에 올라온 짧은 글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리고 순식간에 거센 파장을 만들어 내더니 결코 자랑스럽지 못한 일로 언론에까지 나오게 된 부실 급식 사건. 그것도 하필이면 한 달 전부터 학부모회와 아버지회가 합심하여 가족영화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던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그리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라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지만 학교와 학부모들 간의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고 화난 민심을 달래기라도 하듯 학부모들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하는 방안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이전보다 더 분주하게 움직이며 잠을 설치고 머리를 쥐어짜던 학부모회 임원으로서의 임무도 그렇게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이제는 시간이 해결해주리라는 믿음으로 고이 묻어 둔 기억.




 2021년 겨울, 퇴근하자마자 집이 아닌 학교로 향하던 날이다.

급식 개선 관련 2차 간담회를 위해 학부모회(아버지회 포함), 급식소위원회 그리고  교장선생님 이하 관리자 선생님들까지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지난 2주간 재학생 학부모님들이 직접 참여하고 작성한 급식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특히 급식의 주체인 우리 아이들에게도 관련 내용을 공유하고, 앞으로는 학생자치회를 통해 급식 문제를 지속적으로 소통하기로 하였다.

우리 땡땡땡 초등학교 급식 식단에서는 기존과 달리 메뉴 개선에 대한 요구사항이 적용된 것을 학부모들이 느낄 수 있으며 앞으로지속적으로  나아지고 있음을 확연하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교장선생님의 약속에는 그간의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이 모든 변화가 당장에는 확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분명히 변화되고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선과 관심으로 계속 급식모니터링에도 참여해 주시고, 가정에서도 아이들의 편식 개선을 위한 지도를 꾸준히 해주십사 하는 공지글을 올려 우리 아이들이 맛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행복한 점심시간을 위해서 애정 어린 관심을 부탁하며 그래도 훈훈하게 일단락이 된 사건.




 그런데...!!!

그것이 해결된 것이 아니었던 말인가!!

새 학기 시작한 지 3일 만에 긴급회의 소집 안내 문자가 왔고, 이번에는 대체식 제공도 어려울 만큼 시일이 촉박한 시점에서 한계에 다다른 구성원들의 급식실 운영을 중단하겠다는 선언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인력난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급식실을 가동할 수 없다는 예고까지 단호하고 강경한 입장을 전하는 자리였다. 지난날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우리 아이들의 달라진 급식에만 관심을 쏟는 동안 조리실의 업무 강도는 날로 높아지고, 소문은 또 다른 소문을 낳게 되어 조리실무사들 간에 기피 1호 학교가 되어버린 건가 보다.

무상급식을 감사하기보다는 그저 당연하게 여기던 나도 그렇게 새벽 기상하며 두 아이의 도시락을 준비하고 출근한 뒤 짬짬이 조리실무사 구인 글을 커뮤니티에 올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글을 읽고 소소한 문의라도 남겼을 까 봐 화장실을 갈 때에도 핸드폰을 챙겨 가고 수시로 커뮤니티를 들락거리며 확인했다. 다른 임원은 학부모 급식실 배식봉사인원을 구하는 글을 통해 조리실무사가 구해지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여 부모인 우리라도 나서서 급식실이 운영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읍소하였다. 도시락을 싸올 수 없는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급식실은 장기간 문을 닫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학부모 임원 단톡방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깨똑, 깨똑!" 알림음이 끊이지 않고, 중단된 급식실을 어떻게 하면 가동할 수 있을지 기상천외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올라왔다. 또한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구인 문의가 있으면 로또라도 당첨된 거 마냥 다 같이 기뻐하였다. 나 역시 잠들 때까지 손에서 폰을 들고 있다가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폰을 찾게 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채우던 날 학교로부터 연락이 왔다. 조리실무사 채용 예정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학교를 찾아와서 당장 일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해주셨다고.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난 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엄마, 배고파~" 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맴돌고, 엄마는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주방으로 직진해서 전자레인지, 오븐, 밥솥과 가스레인지가 모두 바쁘게 일하느라 정신을 초집중해야 했던 일주일이 이제는 끝난 것인가 살짝 눈물이 맺히는 벅찬 주말이다.

새벽 알람보다 더 일찍 일어나게 될 만큼 온몸이 긴장한 채 잠들어야 했던 일주일.

무상급식의 감사함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내겐 단 일주일 만에 끝났지만, 우리 엄마들은 어릴 적 우리들을 위해 무려 십여 년간 네다섯 개의 도시락을 싸기 위해 숱한 날들을 새벽 기상하면서도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는 것이 실로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한국인의 밥심!!

오늘도 밥상을 차리기 위해 수고해주시는 모든 분들의 땀과 정성에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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